집밖 계단 대피·비상탈출요령 숙지…훈련 안 한 곳도 많아
아파트 '자율참여'로 지역·단지별 편차…서울시 "미비점 개선"
"대피훈련 도움" "잘 몰라"…서울 첫 '아파트 안전점검의 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지금은 훈련 상황입니다.

현재 000동 00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00층 입주자는 옥상 또는 지상으로 신속히 대피해 주세요.

집 안으로 화염이나 연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피난을 자제하고 119에 구조 위치를 알린 후 대기하시길 바랍니다.

"
저녁식사가 한창인 10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평동의 한 아파트.
아파트 주민 정모(40)씨는 화재가 발생했다는 안내방송에 9살 아들과 함께 집 밖으로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흰색 손수건으로 온 얼굴을 가린 채였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이날을 '아파트 안전점검의 날'로 정하고 오후 7시부터 10분간 서울 전역 아파트에서 화재 발생을 가상한 대피훈련을 했다.

지난해 성탄절 도봉구 방학동에서 갑작스러운 화재로 2명이 숨지는 등 최근 아파트 화재 피해가 잇달아 이 같은 훈련을 마련한 것이다.

훈련은 관리사무소를 중심으로 화재 상황을 가정한 안내방송과 세대별 피난, 각 가정의 소방시설 점검에 주민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정씨는 "훈련인 걸 알았지만 진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들에게) 교육하는 차원에서 훈련에 동참했다"라고 말했다.

"대피훈련 도움" "잘 몰라"…서울 첫 '아파트 안전점검의 날'
또 다른 주민 김홍기(70)씨는 "훈련 덕분에 다용도실 발코니 벽을 부수고 옆집으로 탈출할 수 있는 경량칸막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화재가 나한테도 언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라고 했다.

김씨는 "평소엔 화재가 발생했을 때 계단으로 대피해야 한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무조건 대피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며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화재 관련 대피 훈련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반면 평소처럼 조용한 일상을 보낸 곳도 적지 않았다.

같은 시간 마포구 도화동의 한 아파트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안내방송은 없었다.

대피훈련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그게 뭐냐"라고 반문했다.

따로 전달받은 내용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이날 점검이 민방위 훈련처럼 의무적인 게 아니라 자율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각 판단에 따라 이뤄진다고 시 소방재난본부는 설명했다.

이 아파트 주민 최모(50)씨는 "도봉구 아파트에서 돌아가신 분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3층에 사는데 불이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며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 보여주는 '화살표를 따라서 대피하라'는 게 일상생활 안전훈련의 전부"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훈련이 없었던 마포구 아현동의 한 아파트 주민 허모(41)씨는 "오늘 저녁 안내방송은 층간소음에 유의하라는 방송이 전부였다"며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 4학년으로 어린 만큼 훈련이 있으면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피훈련 도움" "잘 몰라"…서울 첫 '아파트 안전점검의 날'
도화동 아파트의 경우 소방·피난 규정이 본격 도입되기 전인 1997년 5월 준공됐다.

15층 이하는 스프링클러 설비와 세대별 완강기를 설치하는 대상이 아니다.

방학동 아파트와 여건이 유사하다.

서울시는 지난 7일 소방·피난규정이 도입되기 전에 지어진 노후 아파트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아파트 안전점검의 날도 지정해 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 '자율 참여'는 지역이나 단지별로 편차가 크다는 점을 보여줬다.

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자율 훈련인 데다 서울에 아파트가 워낙 많기 때문에 모든 곳에 홍보하는 게 쉽지 않아 서울시 공동주택 통합정보마당에 안전점검의 날 관련 공지를 올리고 관리사무소에 이를 안내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며 이번 훈련에서 드러난 미비점은 향후 보완하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