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中 자원 무기화에 무방비인 한국
중국이 미국의 대중(對中) 첨단기술 수출통제 조치에 자원 무기화로 맞불을 놓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의 협력 틀과 통상 관행을 파괴하는 행위다. 그런데 중국도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냉전이 도래했다는 평가 속에 각국의 필요에 따라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비신사적 행태가 국제사회의 새로운 질서가 됐기 때문이다.

작년 말 중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제재 수위가 강화되자 중국은 희토류 가공 기술의 수출을 금지하고 나섰다. 중국이 희토류에 대한 직접적인 수출통제 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국제사회에 과시한 것이란 해석이 뒤따랐다. 희토류 수출통제는 대상 국가에 실질적인 안보 위협을 의미한다. 희토류는 정밀유도탄과 전략핵무기 등 첨단무기의 필수 소재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가 단순히 ‘은유’가 아니라 진짜 무기가 되는 셈이다.

자원 무기화 본격화하는 중국

희토류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중국의 야심이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한 국가 주도 프로젝트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1990년대까지 희토류로 제조하는 영구자석의 90%는 미국과 유럽에서 생산됐다. 하지만 2010년께 중국은 영구자석 시장점유율을 90%까지 끌어올렸다. 1990년대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영구자석 생산기업을 닥치는 대로 인수했는데, 중국 정부는 이를 물밑에서 지원했다. 이 과정을 통해 희토류 가공 기술을 끌어올린 중국은 서서히 희토류 시장 독점을 현실화했다.

중국이 국가 주도로 희토류를 포함한 주요 광물을 장악해 나가는 동안 자원 빈국 한국은 미래에 도래할 자원전쟁을 돌파할 내부 역량을 키우는 데 실패했다. 한국이 조금 더 일찍 국제 정세 변화에 눈을 뜨고 대비했다면, 상황이 이토록 우리에게 불리하게 재편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한 자원외교를 국가 아젠다로 키워나가지 못한 것은 뼈아프다.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실패한 자원 투자에 대한 원성만 남고, 국가의 장기 비전은 실종됐다.

한국, 내부 역량 키우는 데 실패

중국이 희토류 수출 금지를 본격화하면 희토류와 영구자석 수입을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대응 방안이 마땅치 않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들은 “희토류 수출제한은 미·중의 전면전을 의미한다”며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를 ‘말대포’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책임감 있는 대응 조치는 들려오지 않는다. 30년 뒤 국가 미래를 설계해야 할 정치인들은 3개월 뒤 선거 전략 수립에 몰두하고 있고, 관료들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몸을 사리고 있어서다. 그사이 전기차·배터리·디지털 산업 등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전장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키워 온 기업인들은 자원 전쟁의 불똥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고(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1995년 4월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오찬을 하면서 “우리나라 기업은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했다. 30년이 지났는데 삼성전자가 일류 기업으로 올라섰다는 사실을 빼고는 이 회장의 당시 작심 발언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자원 무기화 시대, 한국 정부의 전략 부재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