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의원들 무소불위에 '시위 자유구역' 된 국회
지난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 설치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천막 부근에서 ‘흉기 난동’ 소동이 벌어졌다. 50대의 한 이 대표 지지자가 “단식 중인 이 대표를 병원에 데려가라”며 국회 경비대 소속 여성 경찰관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혔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후 “당분간 국회 경내 모든 집회를 불허하겠다”고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국회사무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 의장 발언 이후로도 국회 경내 시위는 45차례 이어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국회는 청사관리규정 5조를 통해 경내에서의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청사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점거해 농성 등을 하는 행위, 허가받지 않고 청사에서 행진하는 것, 벽보·깃발·현수막·피켓 등을 사용하는 행위 모두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역 국회의원이 행사에 참여하기만 하면 이 모든 규정은 무용지물이 된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의원이 참여하면 관행상 의정활동으로 보고 있어 집회를 금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구든 의원 한 명만 참여하면 국회 어디서든 무제한으로 집회·시위가 보장된다는 의미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의 ‘무소불위 시위’는 더 기승을 부리는 추세다. 국회사무처 집계에 따르면 2021년 110번, 2022년 73번이던 국회 경내 시위는 올해 11월 말을 기준으로 285번에 이르렀다.

의정활동이라기엔 궁색한 시위도 많다. 올해 충북지역 국회의원들은 1500여 명의 지역 유권자를 불러 ‘중부내륙연계발전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 통과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지역구 보여주기용’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 정쟁성 시위도 계속된다. ‘윤석열 정권 폭정 저지’를 주제로 한 민주당의 촛불문화제는 올해만 6차례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렸다. 사무처에서 금지한 촛불이 사용된 야간 집회지만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이 대거 참여했다는 이유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반 집회나 국회 기자회견은 인원을 미리 신고해야 하고, 국회 내 기자회견은 자리도 따로 잡아야 하지만 계단 앞 시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절차를 건너뛰고 세를 과시하는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공간이다. 하지만 법을 만드는 의원들은 그 공간을 관리하는 규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정치권은 관례라는 이유로 가장 가까운 공간에서 벌어지는 꼼수와 탈법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