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에 미국 정치인들이 제동을 걸었다. 공화당 의원들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라며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게 매각을 막아야 한다고 요청했고, 민주당 의원들도 동조하는 모양새다.

민간 기업의 해외 매각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든 점도 그렇다. 철강산업이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도 아닐뿐더러 US스틸의 세계 순위는 27위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도 1위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게다가 일본은 미국의 긴밀한 동맹국이 아닌가. 그런데도 안보와 제조업 기반이 흔들릴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미국 정치권의 입장은 단호하다. 핵심 기간산업은 우방에조차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산업정책의 기존 원칙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선 요즘 외국의 기간산업 분야 기업을 인수하려다가 안보 리스크 문제 때문에 무산된 사례가 숱하다. 동맹국이어도 가차 없다.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항공기 부품 기업인 미크로테크니카를 인수하려는 프랑스 기업을 가로막았다. 앞서 미국 엔비디아가 영국의 반도체 설계 기업인 암(ARM)을 사려고 했을 때도 영국 정부가 반대 목소리를 냈다.

SK하이닉스와 키오시아(옛 도시바메모리)의 갈등도 기술 패권 경쟁 앞에선 언제라도 동료가 적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8년 낸드플래시 분야 3위인 SK하이닉스가 2위인 키오시아에 대규모 투자했을 때만 해도 양사의 시너지 기대가 컸다. 합병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키오시아는 오히려 4위인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합병을 검토 중이다. 성사되면 SK하이닉스는 물론 낸드플래시 1위인 삼성전자까지 위협받는다.

가뜩이나 주요국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같은 법안을 잇달아 내놓는 등 자국 기업 우선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예전 같은 글로벌 공급망만 믿고 방심하다가는 눈 뜨고 코 베일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