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日 기업, 2018년 10월 이전 소송에 소멸시효 주장할 수 없다"
제기된 소송 약 70건·피해자 수백명 추정…배상금 수백억대로 늘어날수도
2차 소송 대부분 승소 전망…2019년 4월 이후 소송은 '시효 연장' 다퉈야
강제동원 배상판결 이어질 듯…'3차 소송'은 쟁점 남아
대법원이 강제동원 배상 소송의 민법상 소멸시효 쟁점과 관련해 21일 전향적 판단을 내리면서 각급 법원에 계류 중인 관련 소송 대부분이 피해자들의 승소로 매듭지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자 대리인단에 따르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전국 법원에 제기된 소송은 약 70건으로 피해 당사자는 수백명대로 추정된다.

이 중 5건은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됐고, 청구가 기각된 채 상소 없이 확정된 사건도 있다.

소송 계속 중인 사건들 대부분은 소멸시효와 관련한 대법원판결을 기다리며 1·2심 단계에 멈춰있는 상태다.

소멸시효란 일정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다.

통상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민법상 대원칙이 실체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 측은 관련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이미 지나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고, 하급심 판결도 엇갈렸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과거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2018년 10월 30일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대법원 판례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는 경우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정한다.

강제동원 소송의 가장 큰 장애물을 걷어냄으로써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인정될 수 있는 폭을 크게 넓혔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강제동원 소송은 여운택·이춘식 씨 등이 제기해 2012년 파기환송을 거쳐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승소가 확정된 1차 소송, 2012년 파기환송 판결 이후 피해자들이 제기한 2차 소송,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제기된 3차 소송으로 분류된다.

이날 대법원판결에 따라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2차 소송은 사실상 전부 승소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할 때 법원은 피해자가 강제동원 과정에서 입은 피해 정도에 따라 통상 1인당 1억원∼1억5천만원의 배상을 일본 기업에 명령한다.

멈춰있던 소송들이 재개돼 배상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일본 기업 또는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이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돈은 수백억원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3차 소송의 경우 객관적 장애 사유가 해소된 뒤 '상당한 기간' 내에 소송을 제기했는지를 두고 법리적으로 다퉈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상당한 기간'이 어디까지인지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진도군 민간인 희생 국가배상 청구 사건에서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법상 시효정지 기간은 통상 6개월이다.

일본기업 측은 실제로 재판에서 2012년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기준으로 6개월을 초과해 제기된 소송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도군 사건에서 대법원은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해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아무리 길어도 민법이 규정한 단기 소멸시효 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2019년 4월 이후 제기된 소송은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기간을 연장해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 해당함을 입증하는 것이 과제로 남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