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호프만이 다짜고짜 메릴 스트리프의 뺨을 때린 이유는 [책마을]
아이작 버틀러 지음
윤철희 옮김/에포크
704쪽|4만원
메소드 연기는 대체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메소드가 정말 연기일까.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이란 부제를 단 <메소드>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메소드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책이다. 저자 아이작 버틀러는 한때 메소드 연기를 추구했던 배우였다. 하지만 연기에 필요한 감정을 관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배우를 그만두고 연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평론가이자 연출가인 그는 꼼꼼한 자료 조사와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메소드의 역사를 매혹적으로 풀어냈다. ‘메소드 혁명’은 1890년대 러시아에서 싹이 텄다. 창시자는 러시아 배우 겸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였다. 그는 위대한 연기를 꿈꿨다. 연극 무대 위에서의 틀에 박힌 연기가 거슬렸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시킨의 경구에서 영감을 얻었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정념에 대한 진실, 감정의 핍진성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지성이 극작가에게 요구하는 바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진짜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의’ 진실된 연기를 추구했다. 그러기 위해선 배우가 캐릭터가 처한 상상의 현실에 철저하게 녹아들어야 했다. 캐릭터처럼 느끼고, 캐릭터처럼 생각해야 했다. 이런 방식의 연기를 ‘페레지바니예’라고 불렀다. 이런 방식은 옛날에도 있었다. 하지만 폄하됐다.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19세기 말까지 연기는 기술적인 것이어야 했다.
고대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는 “커다란 슬픔이나 분노에 실제로 젖어 든 배우는 우리에게 평범하고 적나라한 격정을 안겨줄 뿐”이라고 했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극단적인 감성은 그저 그런 배우를 만들어낸다”며 “숭고한 배우의 탄생은 감성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을 때야 가능하다”고 했다.
'페레지바니예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새로운 방식으로 연출한 극은 러시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가 공동 설립한 극단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유럽 투어에 이어 미국 투어를 떠났다. 미국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배우들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새로운 연기 방식이 미국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1931년 미국 뉴욕에서 창설한 연극집단 ‘그룹 시어터’가 여기에 메소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성 영화와 함께 급격하게 커진 영화 산업은 메소드 배우들을 환영했다.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는 연극 무대보다 세심하고 내밀한 연기가 필요했다. 말런 브랜도, 몽고메리 클리프트, 제임스 딘, 로버트 드니로 등으로 이어지는 메소드 배우들의 계보가 이렇게 탄생했다.
한편으로 메소드는 배우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진실된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개인적인 고통, 슬픔, 분노 등 트라우마 같은 기억을 끄집어내야 했다. 연기를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했다. “연기의 즐거움을 앗아갔다”는 배우들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메소드 배우들은 항상 극적인 것을 추구했기 때문에 평범한 인물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코엔 형제, 데이비드 린치, 팀 버튼 등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이 등장하면서 메소드의 인기가 시들해진 이유다.
그럼에도 메소드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이제 모든 배우는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진실된 연기를 추구한다. 저자는 “메소드는 단순히 연기론이나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울먹이게 만드는 든든한 방법이 아니다”며 “변화를 불러오고 혁명을 일으킨 현대적인 예술운동이자, 20세기의 위대한 생각”이라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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