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무너지면 벌어지는 일들 [흥청망청]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전형진 기자
집값이 떨어지면 부동산시장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10여년 전 한경 기사로 함께 살펴보시죠. 우선 우리가 호재라고 영혼까지 끌어오는 굵직한 계획들은 먼지가 돼서 날아갑니다. 지금 이 CG에서 우리 눈앞에 실재하는 것은 롯데월드타워 하나뿐이죠. 용산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용산정비창 빈 땅은 금융위기의 상징이자 생채기이기도 하죠. DMC도 랜드마크 부지가 아직 안 팔리고 있고, 송도와 청라 또한 빈 땅입니다. 과거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사려는 집이 1억원이라고 해보죠. 담보인정비율(LTV) 70%에 맞춰서 7000만원을 대출받아 그 집을 샀단 말이죠. 근데 집값이 7000만원이 돼버렸네? 그럼 LTV는 몇 %인가요? 100%가 됩니다. 은행 입장에서 이 대출의 만기를 연장할 땐 7000만원을 기준으로 다시 70%를 계산해서
'49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2100만원은 갚아라' 이렇게 나온다는 거예요. 일종의 마진콜이죠. 대출쪽에선 계속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거치기간이 끝나고 원리금 상환 들어가는 분들, 하필 또 변동금리면 금리인상기엔 힘들죠. 기사에서 언급한 전셋값 하락은 우리가 올초까지 봤던 역전세 문제와 맥락이 같습니다. 방 빼는 흥부 보증금 돌려줘야 하는데 당연히 대출 막기도 힘든 내 수중엔 없겠죠. 다음 토끼 들어오면 그 돈 받아서 주려고 했는데 하필 전셋값이 떨어지니까 토끼 돈을 다 줘도 흥부 보증금이 모자란 겁니다. 근데 내 원리금 갚아나갈 돈도 모자라요. 안 풀릴 땐 이렇게 안 풀린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 안 좋으니까 분양받은 사람들은 '차라리 내가 위약금을 낼게 계약 물리자'고 나옵니다. 이미 분양가보다 떨어졌는데 나중엔 더 떨어질 것 같단 이야기죠. '안 물려줘? 그럼 나 돈 안 내.' 이렇게 단체로 중도금대출을 연체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아파트 분양대금에서 중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보통 60% 정도죠. 이게 터지면 시행사도 위험해지기 때문에 수분양자들이 중도금을 볼모로 가격을 깎아달라고 협상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이번엔 1면 기사입니다. 분양이 정말 너무 안 되면 대행사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할인분양을 하게 됩니다. 그때 형평성 문제가 발생해요. 예를 들어 토끼, 자라, 다람쥐 같은 친구들한테 가격을 깎아서 어떻게든 팔았다면 먼저 샀던 흥부가 가만히 있을까요? '왜 쟤들만 깎아줘? 나도 깎아줘'라고 나오겠죠. 그래서 이 할인분양의 소급을 두고 갈등이 빚어집니다. 분란을 막기 위해 할인 자체를 굉장히 교묘하게 하는 경우도 많아요. 명목적인 분양가를 깎는 게 아니라 다른 혜택을 주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 엄청 저렴한 전셋집들이 종종 나오죠. 보통은 융자 낀 집들인데요. 이런 집들은 은행이 세입자보다 선순위니까 경매로 넘어가면 은행부터 채권을 회수합니다. 집값 상승기엔 경매 넘어갈 일이 비교적 줄어드니까 싼 맛에 이런 집 전세가 좀 나갔는데, 하락기엔 아무래도 경매에 취약하니까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건설사들이 세입자를 대신 구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아파트 분양받아서 입주하지 않고 세 놓는 경우라면 그 보증금 받아서 어디에 쓰나요? 건설사에 잔금 내죠. 결국 건설사가 자기 돈 자기가 찾기 위해 나선다는 얘기입니다. 이해가 쉬우라고 건설사로 표현한 건데, 정확히는 사업을 시행하는 주체에 분양대금을 내는 겁니다. 물론 잔금을 못 내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아파트 입주할 때 몇 달 정도 시간을 두는데 사실 이게 '천천히 이사 오세요'가 아니라 '이 기간 안에 잔금 내고 열쇠 받아 가세요'라는 의미거든요. 몇 년 전부터 예고된 입주 날짜지만 잔금 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정비사업도 분쟁이 시작됩니다. 요즘 공사비 계속 올리는 것처럼 시공사에서 자꾸 말을 바꾸는 것이죠. 처음에 제시했던 조건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없어요. 아예 시공사를 구하기 힘든 상황도 오는데요. 왜냐면 방금 그 조건을 괜히 바꾸자고 한 게 아니거든요. 건설사 입장에선 '아니 우리가 봉사합니까, 저 조건에 입찰하게?'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죠. 또 재개발, 재건축 조합원들이 새 아파트를 분양받는 대신 그냥 현금을 받고 사업에서 나갑니다. 내 재산이 나중에 새 아파트로 바뀔 때의 시세차익을 노리는 게 아니라 현재의 가치만을 딱 계산해서 그만큼만 받고 나간다는 거예요. 남은 조합원들의 부담이 그만큼 늘어나겠죠. 기사에서 언급한 답십리18구역이 지금의 래미안미드카운티입니다.
10여년 전 한경 기사로 살펴보니 하락장의 느낌이 생생합니다. 물론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닙니다. 집값 변동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과거의 사례로 공부하고 대비하자는 의미입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이재형·조희재·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예수아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