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국정 아젠다로 제시했다. 국민이 겪고 있는 ‘마음의 병’을 더 이상 개인 문제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서다.

정부는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정신건강 정책 비전 선포대회’를 열고 ‘정신건강 정책 혁신 방안’을 내놨다. 그간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에 머물렀던 정신건강 정책의 틀을 사전 예방과 회복 지원 등 전 주기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전 국민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종합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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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등 중증질환자만 65만 명

윤 대통령은 이날 선포대회에서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의 붕괴와 과도한 경쟁 등으로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졌지만 국가 차원의 본격적인 투자가 거의 없었다”며 “이제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예방·치료·회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지원 체계를 재설계해 정신건강 정책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건강 문제는 더 이상 극소수 환자에 국한된 의료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75만3000명 수준이던 국내 우울증 진료 환자는 지난해 100만1000명으로 늘었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가 18만6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16만 명), 40대(14만2000명), 50대(12만6000명), 10대(5만9000명), 10세 미만(1700명) 순이었다.

우울증을 비롯해 불안장애나 알코올 및 니코틴 사용 장애 등 정신질환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전체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5년 289만 명에서 2021년 411만 명으로 늘었다. 한국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이 수치는 460만 명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 10명당 1명가량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가 2021년 12월 발표한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성인의 27.8%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이 극소수만 경험하는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최근 잇따르는 ‘묻지마 살인’의 배경으로 지목되는 조현병을 비롯한 분열형 및 망상장애 등 중증 정신질환자 수도 65만 명에 달했다.

정신건강 악화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로 드러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 사망자는 1만2906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를 뜻하는 자살률이 25.2명에 달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평균(10.6명)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미국(14.1명), 독일(9.7명) 등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고, 가장 낮은 그리스(3.9명)의 일곱 배에 육박한다.

고위험군 100만 명 상담해 예방 강화

지금까지 ‘치료’에 집중한 정신건강 관리 체계를 ‘예방·조기 발견→치료→재활·일상 회복’이라는 전 과정으로 확대해 지원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2027년까지 총 100만 명을 대상으로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저소득 1인 가구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총 8시간의 심리 상담 서비스를 통해 정신질환 발병을 조기에 예방하고, 의료·돌봄 등 관련 복지 제도와 연계해 상황 악화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만 20~3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10년에서 2년으로 단축한다. 검사 질환도 우울증에다 조현병, 조울증 등을 추가한다.

중증 정신질환자도 집중 관리한다. 24시간 정신 응급 현장에 출동할 수 있도록 전국 17개 시·도에 정신건강 전문요원 및 경찰 합동대응센터를 설치한다. 올해 기준 139개인 정신 응급병상도 두 배 늘려 시·군·구당 최소 1병상씩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정신질환자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맞춤형 사회적 일자리도 확대한다.

황정환/허세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