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유일 관상어 전문병원장 최상호씨…마흔에 물고기 치료 공부 결심
"30년 전엔 '동물이 무슨 병원' 했지만…물고기, 반려동물로 자리매김하길"
'물고기 병원'을 아시나요…"반려魚도 입원하고 수술해요"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한 건물 4층. '물고기 병원'이라고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글보글' 소리가 15평 남짓한 공간을 가득 메운다.

병원에 있는 40여개 수조 안 여과기에서 물이 떨어지며 나는 소리다.

서울 유일 관상어 전문병원인 이 병원에서는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반려어(魚)인 금붕어부터 남미 아라구아이아강에서 온 희귀종 골든로얄 플레코까지 다양한 종을 볼 수 있다.

지난 1일 병원에서 만난 최상호(44) 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물고기를 정말 좋아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하다"며 웃었다.

그는 어릴 적 학교가 끝나면 동사무소 같은 공공기관이나 은행 등에 있는 물고기를 보러 혼자 '수족관 투어'를 다니고 용어도 모른 채 관상어 전문 서적을 달달 외웠던 '물고기 애호가'다.

오랜 기간 반려어를 키워왔던 그는 지난 2018년 국내 1호 관상어 전문병원인 서경수산질병관리원의 유상준 원장과의 만남이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키우던 물고기들이 이유 없이 죽는 상황이 많았어요.

어려움을 겪던 찰나에 우리나라에 관상어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 원장님께 만나달라고 부탁을 드렸죠. 그분의 모습을 보고 비록 내 나이가 마흔이지만 좋아하는 일은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이후 부산대 수산생명의학과에 편입해 수산질병관리사 면허를 딴 최 원장은 2021년 4월 물고기병원 원장이 됐다.

개원 초기 6개월은 내내 적자가 나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3년만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병원을 계속 운영해 이제는 하루에 적을 땐 1∼2명, 많을 땐 10명 정도의 '물고기 보호자'가 방문한다.

최 원장은 "구체적인 수입은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자리를 잡았다고 말하긴 이르지만 문은 닫지 않아도 될 정도는 된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물고기 병원'을 아시나요…"반려魚도 입원하고 수술해요"
반려어 치료 과정은 대체로 수질 검사, 기생충 검사, 분변 검사에서 시작한다.

검사 결과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데 일부 물고기는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하기도 하다.

최 원장은 국내에 물고기병원이 많지 않은 만큼 좀 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제가 지키려고 하는 건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오시는 분들에게 최선을 다해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설명하자, 두 번째는 새로운 치료기법을 끊임없이 익혀 실력을 발전시키자는 거예요.

"
"'고인 물'이 되지 않으려 한다"는 최 원장은 최근 바쁜 시간을 쪼개 강릉원주대에서 수산생명의학전공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관상어는 종도 많고 키우는 사람도 많지만 질병 연구는 굉장히 부족하다"며 "개척자 정신을 갖고 마치 신대륙을 개척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일하려 한다"고 말했다.

전국에 관상어 전문병원은 최 원장의 물고기병원을 포함해 3곳뿐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물고기를 키우는 반려 가구는 7.3%로 개(75.6%)·고양이(27.7%)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흔한 반려동물이지만 병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최 원장은 관상어 전문병원이 적은 이유로 '수익성 문제'를 꼽았다.

관상어 전문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의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거나 수산생명의학과를 졸업한 뒤 수산질병관리사 면허를 따야 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수산질병관리사 면허 보유자는 1천79명이지만 수익을 위해 대부분이 양식어종 쪽으로 진로를 택하면서 관상어를 치료하는 사람은 국내에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최 원장은 물고기 전문병원이 좀처럼 수익을 내지 못하는 데에는 물고기를 반려동물이 아닌 하나의 소모품으로 여기는 인식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물고기 병원'을 아시나요…"반려魚도 입원하고 수술해요"
"강아지나 고양이는 가족처럼 인식하지만 물고기는 죽으면 버리는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물고기가 아플 때 돈을 들여 치료하려는 사람이 없는 거죠. 그래도 요즘 생명 존중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계속되면서 물고기를 반려동물로 여기는 분들이 확실히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
최 원장은 "물고기는 금방 죽는다는 인식이 많은데 사실 가장 많이 키우는 금붕어의 경우 최대 20년까지는 살 수 있다"며 "양육자의 무지 때문에 죽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물고기를 키우는 이들 대부분은 전문병원이 부족한 탓에 대부분 온라인 카페와 유튜브 등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러다보니 정확하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분별하기 쉽지 않다.

최 원장은 "온라인에는 일반화하기 어려운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 글들이 많다"며 "정보가 엇갈릴 경우 검증된 정보가 담긴 책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강아지, 고양이도 30년 전에는 '무슨 동물이 병원이냐' 했잖아요.

물고기도 언젠가는 하나의 반려동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물고기를 가족처럼 대하는 분들이 많아져야겠죠."
'물고기 병원'을 아시나요…"반려魚도 입원하고 수술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