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올 수능서 만난 'K 판타지' 원조
김원이라는 남자를 아시나요? 며칠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이라면 모두 이 사내의 이름을 알 겁니다. 언어영역에 조선시대 영웅소설 <김원전>이 출제됐기 때문이죠.

<김원전>은 정확히 언제, 누가 창작한 작품인지 알려져 있지 않아요. 당시 소설 독자들은 세책점이라는 일종의 소설 대여점에서 소설책을 빌려 읽었어요. 소설이 귀한 대접을 받던 때가 아니라 작가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독자의 선택을 받으려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놓았어요. 요즘 웹소설과 비슷하죠? 온라인 플랫폼에서 웹소설이 한 편씩 연재되니, 웹소설 작가는 계속해서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만 하죠.

<김원전>은 ‘종합소설세트’ 같은 작품입니다. 당대 유행했던 이야기가 다 녹아 있어요. 기본적으로 영웅 소설인데, 지하국도 나오고 용궁도 나오고 변신도 해요.

조선에서 창작된 소설이지만 배경은 명나라 헌종 시절이에요. 아이가 없어 슬퍼하던 좌승상 김규와 부인 유씨는 선녀가 옥동자를 안겨주는 꿈을 꾼 뒤 아들을 낳아요. 오색빛 구름이 집을 감싸면서 아이를 낳는데, 아이 모습이 기이해요. 마치 수박처럼 검고 둥근 몸에 입 대신에 부리가 달렸어요. 이 아이가 바로 김원입니다.

김원이 열 살이 되자 신선이 나타나 “네가 천상에서 저지른 죄를 다 씻었으니 허물을 벗겨주겠다”고 해요. 의젓한 소년이 된 김원은 무예도 글쓰기 솜씨도 뛰어납니다.

어느 날 머리 아홉 달린 아귀가 공주 셋을 납치하자 김원은 지하국으로 가서 공주들을 구출해냅니다. 도중에 배신당해 위기를 겪지만, 오히려 그 덕에 용궁으로 가서 용왕의 딸과 결혼해요. 집으로 돌아가다가 주막 주인에게 살해당했는데, 기적처럼 부활하고요. 이후 집으로 돌아간 김원은 그의 부모를 봉양하던 셋째 공주를 부인으로 맞아요. 김원과 두 부인은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구름처럼 사라집니다.

<김원전>에는 여러 인기 작품의 흔적이 보여요. 금방울 모습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금방울전>과 비슷하고, 주인공이 흉한 허물을 벗고 변신하는 대목에선 <박씨전>이 떠오릅니다. 괴물의 소굴로 찾아가 괴물을 물리치고 여인을 구출해 혼인하는 내용은 <홍길동전>에도 나오는 장면이에요.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이야기 구조가 매력적이에요. 올해 수능 필적 확인 문구는 양광모의 시 ‘가장 넓은 길’ 중 일부였죠. 시에는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눈이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수능이 끝났다고 모든 고생이 끝난 건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날마다 새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에는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즐거움도 행복도 희망도 있을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