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스라엘 병사 1명과 수감자 1천여명 교환도
1948년 이스라엘-아랍 전쟁 이래 수천명 석방
[이·팔 분쟁] 이스라엘 인질-팔 수감자 맞거래…과거 사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 50명과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죄수 150명을 맞교환하기로 합의하면서 과거 유사한 사례에도 관심이 쏠린다.

국가 수립 초기부터 주변 아랍 국가들과 갈등을 빚어왔던 이스라엘은 1940년대 이후 여러 차례 수감자 석방을 통해 자국 전쟁 포로와 인질들을 돌려받았다.

최근 수십 년간 자국민의 시신 송환과 인질 석방을 위해 이스라엘이 풀어준 수감자는 최소 8천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대규모 수감자 석방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2011년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와 팔레스타인 죄수 1천27명을 맞교환한 사례다.

하마스는 2006년 땅굴을 통해 이스라엘 영토에 침입해 당시 보초를 서고 있던 19세 샬리트를 납치해 5년간 장기 억류했다.

이때 석방된 인질 중에서는 이번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주도한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병사 1명을 인도받기 위해 과도한 양보를 했다는 비판도 나왔으나 샬리트 병장의 생환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협상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팔 분쟁] 이스라엘 인질-팔 수감자 맞거래…과거 사례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질 거래는 1983년 이스라엘 군인 6명과 팔레스타인·레바논 수감자 4천700여명을 교환한 일로 알려져 있다.

이때 풀려난 이스라엘 군인들은 1년 전인 1982년 레바논 남부의 이스라엘군 전초기지에서 보초를 서던 중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전투원들에 의해 납치됐다.

당시 PLO는 이들 외에도 두명의 군인을 더 납치해갔는데 이 두명은 2년 뒤인 1985년 추가적인 수감자 석방을 통해 풀려나게 된다.

협상을 맡았던 팔레스타인의 군부 지도자의 이름을 따 '지브릴 합의'라고도 불리는 이 교환은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악명 높은 범죄자의 석방을 허가한 사례로 남아있다.

이때 이스라엘은 26명의 희생자를 낸 1972년 로드 공항(지금의 벤구리온 국제공항) 총기 난사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인 일본 출신 이슬람 신자 오카모토 고조를 포함해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1천150명을 석방했다.

이후에도 무장 단체들의 핵심 인사나 테러 범죄자들이 이스라엘과 인질 석방 교환을 통해 감옥에서 풀려났다.

2004년 이스라엘은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지도부 몇 명을 포함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죄수 400여명을 이스라엘 군인 시신 3구와 민간인 1명과 교환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가장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수감자 교환은 2008년 레바논 출신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조직원 사미르 알-쿤타르의 석방이다.

쿤타르는 1979년 이스라엘의 한 마을에 침투해 경찰관 1명과 무고한 인질 2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해 이스라엘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후 이스라엘군에 생포된 쿤타르는 29년의 긴 복역 끝에 2008년 2년 전 납치됐던 이스라엘 군인 두 명의 시신을 돌려받는 대가로 풀려났다.

이스라엘은 당시 다른 이스라엘인 시신 200구를 돌려받는 대가로 헤즈볼라 전투원 4명도 함께 석방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