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탄소중립의 값비싼 청구서
올 상반기 미국 뉴욕주에선 ‘가스레인지 전쟁’이 벌어졌다. 주의회가 신축 건물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가스레인지를 쓸 수 없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법안의 취지는 온실가스 감축이었지만 주민들은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국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연방정부는 가스레인지 사용 금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사태를 진화해야 했다. 오늘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 정책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파리기후협정이 채택될 때만 해도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식됐다. 이란 터키 리비아 등 7개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가 협정에 참여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이상과 현실의 충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뉴욕주처럼 탄소중립 정책에 반대하거나, 피로감을 표출하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녹색정책(green)과 반발(backlash)을 합친 ‘그린래시(greenlash)’란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미국에선 내비게이터CO2라는 벤처기업 주도로 중·서부 5개 주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파이프라인 건설이 추진됐다. 탄소를 땅속에 가두는 탄소포집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일방적 토지 수용과 안전성을 우려한 지역사회의 반대로 내비게이터CO2는 지난달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했다. 네덜란드에선 지난해 지구온난화 유발 물질로 꼽히는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해 가축사육 농가 3000곳을 폐쇄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탄소중립 문제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이미 민감한 정치 이슈로 부상했다. 시민들은 지지 정당을 선택할 때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찬반을 잣대로 삼기도 한다. 독일에선 사회민주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의 과도한 기후 대응 정책에 반대하는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의 지지율이 2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존의 탄소중립 정책에서 후퇴하는 나라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 휘발유 자동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연장한 영국과 내년도 기후대책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유류세 감면 제도를 도입한 스웨덴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현실적 목표설정 고민해야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여론의 반대 못지않게 중요한 장애물은 막대한 비용이다.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년 3조5000억달러를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추가 지출해야 한다. 일각에선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발전이 탄소중립에 필요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대규모 태양광·해상풍력 프로젝트들은 최근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여파로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실행 과정에서 탄소중립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질 수 있다. 탄소중립이 민감한 정치 이슈로 부상할 날도 머지않았다. 유럽과 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보다 현실적인 목표 설정과 효과적인 실천 방안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