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이태원동에 설치된 주요 은행의 현금인출기(ATM) 모습. 사진=임대철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이태원동에 설치된 주요 은행의 현금인출기(ATM) 모습. 사진=임대철 기자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0일 연 3%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정부의 가계대출 조이기 기조에 의해 주요 은행들의 주담대 최저금리가 연 5%를 넘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대출 원가에 해당하는 은행채 금리가 하락한 가운데 정부의 상생금융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은행들이 일제히 금리 인하에 나선 결과다. 소상공인 지원을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생금융 정책이 결과적으로 금리 하락을 이끌어 가계부채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의 혼합형(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이날 연 3.86~5.26%로 책정됐다. 직전 영업일인 지난 17일(연 4.03~5.26%)과 비교해 주말 사이 0.17%포인트 인하됐다. 국민은행의 주담대 최저금리가 연 3%대로 떨어진 것은 지난 9월 22일(연 3.9%) 이후 약 2개월 만에 처음이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주말 사이 줄줄이 주담대 금리를 인하했다. 신한은행의 혼합형 주담대 금리는 지난 17일 연 4.66~5.97%에서 이날 연 4.60~5.90%로 최저금리 기준 0.06%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0.06%포인트)과 농협은행(-0.07%포인트)도 주담대 최저금리를 내렸다.

이날은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오후 3시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 회장을 소집해 상생금융을 주제로 간담회를 여는 날이다. 상생금융 간담회가 개최되기 전에 은행들이 일제히 금리를 내린 것이다.

은행들은 정부가 상생금융을 본격적으로 압박하기 전인 이달 초까지 해도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조이기 정책에 발맞추기 위해 연이어 금리를 인상하고 있었다. 농협은행의 혼합형 주담대 최저금리는 지난달 4일 연 4.05%에서 이달 3일 연 4.81%로 한 달 사이 0.76%포인트 올랐고, 같은 기간 우리은행(0.53%포인트)과 국민은행(0.39%포인트)도 큰 폭으로 올랐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종노릇", 이달 1일 "갑질" 등 표현으로 은행권을 강도 높게 비난하자 11월 둘째주부터 주담대 금리가 하락 전환됐다. 국민은행의 주담대 최저금리는 이달 3일 연 4.39%에서 이날 연 3.86%로 17일 만에 0.53%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의 혼합형 주담대 최저금리는 연 5.02%에서 연 4.6%로 0.42%포인트 떨어졌다. 우리은행(연 4.75%→연 4.33%)과 농협은행(연 4.81%→연 4.41%)의 최저금리도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윤 대통령의 이자장사 비판에 금융당국의 기존 가계부채 관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주담대 금리 3%대로 '뚝'…분위기 완전히 뒤바뀐 이유
은행들은 최근 은행채 금리가 하락해 주담대 금리를 낮출 여력이 생겼다는 입장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실제로 은행채 5년물(AAA·무보증)의 평균금리는 지난 3일 연 4.586%에서 지난 17일 연 4.279%로 0.307%포인트 하락했다. 하지만 은행채 금리 하락폭보다 주담대 금리 낙폭이 더 큰 만큼 정부의 상생금융 정책이 시장금리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달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주담대 금리를 올렸던 은행들의 뺨을 정부가 상생금융으로 때려준 덕분에 금리가 일제히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