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주요국이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했으나 은행 횡재세에 대한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경제 대국은 은행 횡재세에 부정적인 반면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상대적으로 국가 재정이 취약한 곳과 헝가리 체코 리투아니아 등 신흥국이 은행 금고에 손을 댄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외신들에 따르면 영국은 표면적으로 2011년 금융위기 대응 부과금을 도입해 추가적 횡재세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영국 안팎에선 금융 허브로서 런던의 위상을 지키려는 보수당 정부의 의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금융산업은 국내총생산의 7.3%(2021년 기준)에 달하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영국 금융업연합회 더시티UK의 헬렌 화이트 정책책임자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횡재세는 영국을 다른 국제 금융 중심지보다 훨씬 더 경쟁력 없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물론 독일의 중도좌파 연립정부도 은행의 경쟁력 저하를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존 단일시장에서 은행들이 경쟁하고 있어 자칫하면 외국 은행에 시장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BNP파리바는 벨기에와 이탈리아 소매금융시장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선제적으로 은행 횡재세를 도입한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스페인 중도좌파 정부는 2022년 12월 은행의 순이자소득과 8억유로 이상의 순수수료에 대해 2년간 4.8%의 세금을 부과했고, 최근 연장 여부를 논의 중이다.

파블로 에르난데스 드 코스 스페인 중앙은행 총재는 “현재 은행의 수익성이 높지만 일회성에 불과하고 고금리로 인한 세계적 차원의 경제적 위험과 스페인의 국내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이탈리아는 지난 8월 각료회의에서 시중은행에 일회성 특별세를 부과하는 안건을 승인하며 횡재세 대열에 합류했으나 막판에 법안이 완화됐다. 이탈리아는 당초 순이자이익이 2년 전 대비 10% 넘게 늘어난 은행에 초과 이익의 40%를 세금으로 거둬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발표 직후 인테사산파올로와 방코BPM 등 주요 은행 주가가 5% 이상 급락하며 논란이 빚어졌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9월 의견서를 통해 “이탈리아의 은행 횡재세 법안은 장기 전망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은행을 경기침체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탈리아는 수정안을 통해 횡재세를 은행의 위험가중자산의 0.26%까지만 부과할 수 있도록 상한을 두고, 자산 부실화에 대비한 추가 자본 준비금을 적립하면 세금을 감면받는 옵션을 마련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