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고르는 고객. 사진=한경DB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고르는 고객. 사진=한경DB
집에서 술을 즐기는 ‘홈술족’이 늘면서 주류의 ‘도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무알코올 맥주나 스파클링 막걸리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저도주와 하이볼의 인기로 양주 등 고도주 판매가 증가했다.

15일 하이트진로가 최근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을 통해 월 1회 이상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 음용 경험이 있는 2040 성인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개월 내 직접 구매한 주종으로는 21.3%가 무알코올·비알코올 맥주라고 답했다. 이는 탄산주·칵테일주(16%), 양주·위스키(15.6%), 저도주(9.5%), 과일소주(8.8%), 일본청주·사케(5.8%) 구매 비율보다 높은 수치다. 성별 및 연령별로는 20대 여성(25.4%)과 30대 여성(30%)의 무·비알코올 맥주 구매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국 주세법은 알코올 도수 1% 이상인 음료를 주류로 정의하고 있다. 비알코올 맥주는 맥주의 맛을 지녔으면서도 알코올 도수 1% 미만인 성인용 음료를 가리킨다. 현행법상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성인 인증을 받은 소비자라면 온라인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맥주에 매겨지는 주세도 없기 때문에 비알코올 맥주는 일반 맥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다.

비알코올(non-alcohol) 맥주 중 ‘무알코올’이라는 이름이 붙는 제품도 있다. 무알코올 맥주는 문자 그대로 알코올 함량 0.00% 미만으로, 사실상 알코올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음료다. 반면 비알코올은 미량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다.

주류업계는 비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가 300억원 정도일 것으로 본다. 성장세는 매우 가파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비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2014년 81억원 수준이었던 데서 8년 만에 약 4배로 커진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한국의 비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가 2025년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소주와 맥주가 진열돼 있다./사진=최혁 기자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소주와 맥주가 진열돼 있다./사진=최혁 기자
소주 도수도 낮아지는 분위기다. 최근 충청권 주류업체 맥키스컴퍼니는 저도주 열풍에 힘입어 알코올 도수를 14.9도로 낮춘 소주를 내놨다, 창립 50주년을 맞아 내놓기로 한 소주 ‘선양’으로 국내 소주 중 알코올 도수와 칼로리가 가장 낮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20도를 넘던 소주는 ‘부드러운 맛’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점차 도수가 낮아지는 추세다. 앞서 출시된 롯데칠성음료의 ‘처음처럼 새로’와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 제로슈거’는 16도까지 내려왔다.

도수가 낮은 주류로 꼽히는 막걸리 선호도 커지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막걸리 도수는 평균 6도 안팎으로, 17도 이상의 소주보다 도수가 낮다. 막걸리는 과거에 중장년 남성이 선호하는 술이었지만 지금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전라남도 고흥의 유자 과즙을 넣은 '달빛유자' 막걸리는 새콤달콤한 맛이 호평을 받으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이 나 최근 누적 판매량 100만병을 돌파했다. 서울장수의 톡 쏘면서 달달한 '막사(막걸리 사이다)' 제품도 MZ세대 ‘유행템’이다.
서울 한 대형마트의 위스키.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의 위스키. 사진=연합뉴스
저도주 인기만큼이나 고도주 수요도 늘었다. 평균 알코올 도수 40도를 훌쩍 넘기는 위스키는 초호황기를 누리는 중이다. 관세청 수출입통계 자료를 보면 올해 1∼9월 스카치·버번 등 위스키류 수입량은 2만4968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8413t)보다 35.6% 증가했다. 누적 수입액은 지난 9월 기준 2억330만 달러(약 2685억 원)로, 올해는 지난해 전체 수입액(2억6684만 달러)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혼술(혼자 술 마시는 사람) 문화가 유행하고 하이볼(위스키와 음료를 섞어 마시는 술)이 인기를 끌면서 위스키 소비가 급증한 것이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양극화 현상이 주류업계에도 확산하면서 소주·맥주 같은 기존의 평범한 주류보다는 저도주와 고도주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