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론장 사라진 공매도 제도 개선
“죄송하지만 그 질문엔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매도 제도 개선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대부분 전문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의견 내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반드시 익명을 보장하겠다’고 다짐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말미엔 “이름뿐 아니라 회사명만 나가도 옷을 벗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공개 의견을 전달하고 싶으면 홍콩 쪽 증권사를 접촉해보라”고 조언했다.

정부와 여당이 8개월여간 공매도를 금지하는 ‘충격 요법’을 쓴 뒤 제도 개선안을 검토하고 있다. 개인과 기관·외국인 사이의 공매도 담보비율 및 상환기간 일원화, 불법 공매도 가중처벌 등의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공매도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전언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사안을 대부분 반영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증권가에선 “공매도 투자의 주체인 기관투자가들이 제도 개선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공매도 거래는 국내 기관투자가뿐 아니라 글로벌 투자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이뤄진다. 시간대가 천차만별인 전 세계 투자자가 하는 거래다. 주식 대차 협상·확인·계약 과정에선 전화와 텔레그램, 메신저 등 다양한 수단이 활용된다. 이런 제도를 제대로 뜯어고치려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내심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자신들의 반발이 금융당국에 전달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학계와 연구기관의 전문가들도 공개 의견 내기를 꺼린다. 공매도를 논의할 공론의 장이 막힌 것이다.

금융당국의 결정이나 조치에 다른 목소리를 내면 나중에 보복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본시장 저변에 여전히 깔린 것 같아 안타깝다. 과거의 시장을 적절히 선도하고 통제한 금융당국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금융당국 역시 공매도 전면 금지가 다소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정치권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나섰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금이라도 정치권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차단하려면 공매도 제도 개선 논의 과정에 ‘찐전문가’를 끌어들여야 한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전문가들에게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8개월여 고민 끝에 새로운 제도를 내놨는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외면받지나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