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백스의 다중기전 GV1001, 췌장암 미세종양환경 공략 가능성 있어”
10년 전 영국 임상 3상(TeloVac)에 실패했던 ‘GV1001’이 국내 임상 3상을 통해 췌장암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임상 결과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E)급 국제학술지 영국 암저널(BJC)에 게재됐다.

최근 GV1001의 임상을 이끈 연구책임자이자 논문의 주 저자인 송시영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사진)를 만나 췌장암의 임상적 특징 및 다중기전을 지닌 GV1001의 췌장암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들었다.

GV1001은 젬백스가 2008년 노르웨이로부터 특허를 들여와 15년 이상 개발해온 다중기전 신약 후보물질이다. 삼성제약은 2015년 4월 젬백스로부터 췌장암 치료에 대한 GV1001의 국내 제조·공급 판매권한을 확보했다.

GV1001은 국내 도입 전 영국 51개 기관에서 1572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했다. GV1001과 젬시타빈 및 카페시타빈을 병용투여했다. 그 결과 대조군(젬시타빈·카페시타빈 병용투여) 대비 전체 생존율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향상되지 않았다.

송시영 교수는 연세대 의대 췌장담도암센터 소화기내과에서 수많은 난치암 환자를 진료해온 전문가다. 그는 신약개발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GV1001의 국내 임상 주도를 제안받은 그는 과거 영국 임상 논문을 면밀히 분석했다. 당시 영국의 연구진과도 소통하며 가능성을 살폈다. 그 결과 GV1001의 효과를 입증할 단서를 찾았다. 이를 기반으로 임상시험계획을 수립하고 수행했다.

췌장암은 대표적인 난치암이다. 지난 5월 발표한 국립암센터 통계 자료에 따르면 췌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2016~2020년도 발생 기준)은 15.2%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전체 암 5년 상대생존율이 71.5%인 것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다. 삼성제약이 진행한 ‘GV1001’ 췌장암 국내 3상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다. 다음은 일문일답.

Q. BJC에 게재된 논문의 주요 내용은?

A. 국내 16개 병원에서 GV1001의 췌장암 임상 3상을 진행했다. 148명의 국소진행성 및 전이성 췌장암 환자 중 투약군에는 GV1001과 ‘젬시타빈’과 ‘카페시타빈’을 병용투여했다. 대조군은 젬시타빈과 카페시타빈을 투여했다.

그 결과, GV1001 투여군의 전체 생존기간 중앙값(mOS)은 대조군 4.5개월 대비 51% 늘어난 7.3개월을 기록했다. 종양진행시간 중앙값(mTTP)은 투약군 7.3개월 대조군 4.5개월, 무진행생존기간중앙값(mPFS)은 투약군 7.3개월과 대조군 4.6개월로 각각 통계적 유의성을 입증했다. 예후가 나쁜 췌장암 임상에서는 이례적인 결과다.

Q. 췌장암의 임상적 특징은 무엇인가.

A. 췌장암은 조기진단이 어렵고 예후가 나쁜 암에 속한다. 췌장이 후복막(등쪽)에 위치해 암을 인지하기 어렵고 증상도 늦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췌장암은 진행암 단계에서 발견되며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췌장은 대동맥과 하대정맥 등 중요한 혈관이 근접해 수술도 쉽지 않다. 암이 혈관이 붙어 있는 경우 제거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수술을 받지 못하는 나머지 80%는 항암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높은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Q. 췌장암 항암치료 반응률이 낮은 이유는?

A. 췌장암은 분자생물학적인 악성 기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딱딱한 암덩어리 속에 적은 수의 암세포가 분산돼 있다. 암세포의 사이사이를 딱딱한 섬유질(데스모플라시아)이 에워싸고 있다. 섬유질은 암세포 살상에 있어 두 가지 장벽으로 작용한다.

첫 번째는 물리적인 장벽(physical barrier)이다. 암 살상력이 높은 화학항암제라도 섬유질에 가로막혀 암세포에 접근이 쉽지 않다. 두 번째는 면역학적 장벽(immunological barrier)다. 최근 각광받는 면역항암제로 췌장암을 치료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있어왔지만 아직 성공 사례가 없다.

Q. 췌장암 치료제 개발 전략은 무엇인가.

A. 췌장암의 기질을 고려해 종양미세환경(TME)을 공략해야 한다. 단순히 암 살상능력만 높다고 췌장암 치료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실제로 다른 암종에서는 반응률이 높은 항암제도 췌장암 치료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앞서 설명한 데스모플라시아도 TME의 일부다. 데스플라시아와 암세포간에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항암효과를 방해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여러 약물들을 병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데스모플라시아를 녹이는 약을 주사해 췌장암을 치료하려는 연구도 있었지만 임상 3상에서 실패했다.

Q. GV1001의 국내 3상 설계가 이전 임상과 다르다.

A. GV1001은 2013년 영국에서 진행된 췌장암 임상에서 유효성 입증에 실패한 이력이 있는 물질이다. 해당 임상에 대한 후향적 분석 결과, 이오탁신 수치가 높은 환자에서 반응성이 높게 나타났다. 이에 국내 임상 3상은 전향적으로 이오탁신 수치가 높은 환자를 모집해 진행했다.

영국 임상이 너무 많은 암센터에서 진행됐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 경우 임상에서의 세부 관리가 어렵고 일관성이 부족할 수 있다. 가급적 동일한 임상 조건을 갖추도록 중앙에서 세심히 컨트롤했다.

마지막으로 임상 모집 과정에서 복막내전이 소견 환자를 제외한다는 원칙을 세워 적용했다. 췌장암은 복막을 통해 뇌나 폐, 간 등으로 전이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매우 예후가 나쁘기 때문에 임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확인하는 데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앞선 영국 임상에서는 복막내전이 환자를 따로 제외하지 않았다.

문제는 복막내전이를 구분하기 위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양전자방출컴퓨터단층촬영(PET-CT) 등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복막내전이가 의심되는 방사학적인 소견들을 컨트롤타워로 모으고 3명의 방사선과 의사들의 내린 통일된 의견을 참고해 복막 전이 소견이 없는 환자들만 임상 대상으로 선정했다.

Q. GV1001이 췌장암 치료제로 상용화될 경우 기대되는 역할은?

A. GV1001은 오랜 기간 여러 임상을 통해 안전성이 입증된 약이다. 하나의 병용 투여 선택지로 자리잡는다면 췌장암 공략을 위한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현재 췌장암에는 두 가지 병용 조합이 주로 쓰인다. 하나는 이번에 국내 3상에서 GV1001과 병용 투여한 ‘젬시타빈’ 및 ‘카페시타빈’이다. 젬시타빈은 1996년 췌장암 1차 치료제로 출시된 약이다. 카페시타빈은 5-플루오로우라실(5-Fu)의 전구 약물이다. 젬시타빈의 항암 효과를 높이고 내성을 늦추기 위해 병용하는 약물이다.

다른 하나는 네 가지 약의 조합인 폴피리녹스(FOLFIRINOX, 살리플라틴·이리노테칸·5-FU·류코보린) 요법이다. 국내에서는 용량 등을 한국인에 맞게 조절한 mFOLFIRINOX를 사용한다. 두 병용조합 모두 기존에 있던 약들을 이리 저리 섞어 쓰며 최고의 병용조합을 찾아낸 결과물이다.

폴피리녹스는 반응률이 높아지며 현재 표준치료로 자리잡았다. 많은 임상 사례로 최근에는 더욱 치료 성공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GV1001도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잡는다면 최적의 조합에 포함될 수 있다. 폴피리녹스와의 병용 요법도 결과가 기대된다.

Q. 췌장암 적응증에 대한 GV1001 개발 과제는?

A. GV1001이 췌장암을 어떻게 치료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연구되지 않았다. GV1001이 항암, 항염, 항섬유화 등의 다중기전을 가진 물질인 만큼 화학항암제와 병용했을 때 TME에 작용해 부가적인 항암 효과를 일으키는 여러 요소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오탁신과의 연관성은 후향적으로 발견했지만 병용조합의 선택지로 쓰인다면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이번 논문에서 이오탁신 외에도 MMP-2 및 카테닌-알파1 등이 GV1001의 반응성과 연관돼 있음을 확인했다. GV1001의 췌장암 항암 기전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병용조합에 대한 가능성도 기대된다. 임상 단계에서 폴피리녹스 등과의 다양한 병용 가능성을 확인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임상을 시작할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영국 임상과 같은 조합인 젬시타빈·카페시타빈 조합과의 병용만을 허용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에서 ‘마스터 프로토콜’(여러 하위집단을 설정해 다양한 병용요법을 동시에 진행하는 임상 설계)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국내에도 도입된다면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임상 단계에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송시영 명예교수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 후 미국 밴더빌트대에서 암세포생물학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마쳤다. 1993년부터 연대 의대 교수로 임용돼 연세의료원 산학협력단장, 의과학연구처장, 연세의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한 후 췌장담도암 등 난치암 정복을 위한 신약개발 연구사업화에 매진하고 있다.

박인혁 기자 hyuk@hankyung.com

**이 기사는 2023년 11월 14일 08시 35분 <한경 바이오인사이트> 온라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