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달 7~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열었다. 최혁 기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달 7~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열었다. 최혁 기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년 만에 한국에 다시 방문했다. 올해는 투간 소키예프와 함께 한국 투어에 나섰다. 11월 8일 공연은 협연 없이 오로지 교향곡 2개만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빈 필 고유의 색깔을 느끼고 싶었던 클래식 팬들에게는 훌륭한 구성이었다.

빈 필이 첫 곡으로 연주한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4번이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중에서도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교향곡이다. 특히 거대한 규모의 교향곡 3번과 5번 사이에서 더욱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빈 필의 강점이 두드러진 연주가 됐다. 아름다움이 그 규모나 형식이 아니라 섬세함으로부터 나오는 음악은 빈 필하모닉이 가장 잘 하는 음악이다. 빈 필과 다른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차이가 벌어지는 작품이 바로 고전시대의 예술세계를 담은 음악들이다. 로베르트 슈만이 말한 것처럼 베토벤 교향곡 4번은 아름답게 세공됐으며, 언뜻 단순해보이면서도 우아하다.

1악장이 시작되는 도입부부터 빈 필의 연주는 특별했다. 플롯, 클라리넷, 바순 그리고 호른이 동시에 만드는 음향은 이미 완벽한 균형을 잡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알레그로 비바체에 접어들고 2주제에서 빈 필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2악장에서 활약한 클라리넷의 노래도 인상적이었다.

일류 오케스트라란 걸 체감할 수 있었던 섹션은 역시 목관이었다. 목관악기들이 리트머스 종이가 되는 것이다.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앙상블을 이루고, 다른 섹션의 악기들이 무섭게 목소리를 내는 순간에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아름답게 풀어냈다. 현악기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대목도 적지 않게 있었으나, 현악기들과 각 목관악기들이 번갈아가며 대화를 하는 장면은 각 악기의 음색의 대조와 셈여림의 대조가 극대화된 순간이었다. 그런 이유로 4악장은 아주 흥미진진했다.
빈 필하모닉 내한 공연. 최혁 기자
빈 필하모닉 내한 공연. 최혁 기자
2부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이었다. 1부보다 완성도가 더 높았다. 1부 베토벤 교향곡 4번이 민첩하고, 리드믹한 음악이었다면, 2부는 두터운 질감을 바탕으로 한 선곡이었다. 교향곡 1번의 서주부터 위로 향하는 모티브와 아래로 향하는 모티브가 맞물리는 모습이 생생했다. 여기저기서 모티브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 음영의 대비가 만드는 감동은 대단했다. 그만큼 연주가 투명했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을 특별하게 만든 건 짙은 드라마가 아니라 순수한 음악 그 자체였다.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감동이었다.

2악장에선 음악이 쉬지 않고 노래했으며, 빈 필 특유의 색채가 잘 드러났다. 특히 라이너 호넥의 솔로 파트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감동을 만들어 냈다. 간드러지지 않았지만, 찬란했다. 30년간 빈 필을 이끌어 온 라이너 호넥이 무대 위에 있고 없고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될 것 같았다. 더불어 파트간 치밀한 대비와 대화,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낸 차원이 다른 앙상블은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순식간에 다른 장면을 만들 때도 전환이 매끄럽고, 그 이음새마저 완벽했다.

결정적으로 큰 감동을 만들어 낸 건 지휘자 투간 소키예프였다. 소키예프는 빈 필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휘자였다. 지휘자가 필요한 순간엔 개입해서 음악을 만들지만, 빈 필의 색깔이 필요한 순간엔 전적으로 단원들에게 맡겼다.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는 오케스트라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다. 빈 필과 좋은 성과를 만들어낸 지휘자들이 선택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빈 필 공연을 시작으로 앞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차례로 무대에 오르지만, 이날 빈 필은 어떤 오케스트라도 따라할 수 없는 앙코르를 선보였다. 바로 왈츠와 폴카였다.

이들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소리 왈츠’ 와 ‘트리치 트라치 폴카’ 를 준비했는데, 왈츠가 단순히 쿵짝짝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왈츠는 리듬을 수시로 밀고 당겨 아름다움을 만드는 음악이다. 그 순간만 존재하는 찰나의 미학이 담겨있는 음악인 것이다.

빈 필 단원들은 마치 한 몸처럼 리듬을 탔고, 이들이 아니면 절대로 따라하기 어려운 음악을 만들었다. 우리에게 전통 장단 리듬이 익숙하듯, 그들에겐 왈츠의 리듬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순간부터는 지휘자도 빈 필을 더 이상 통제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도록 내버려 뒀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