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 속 한 장면.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룀이 살로메 역을 맡았다. 사진=Clive Barda
2018년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 속 한 장면.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룀이 살로메 역을 맡았다. 사진=Clive Barda
"당신의 머리는 내 거야. 그대의 목소리는 향로 같았고, 그대를 볼 때면 신비로운 음악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 그런데 왜 나를 보지 않았던 거야? 나를 봤다면 당신도 나를 사랑했을 텐데!"

광기 어린 눈빛으로 목청껏 소리치던 여자는 잘린 남자의 머리를 한 손에 움켜쥔 채 키스를 퍼붓는다. 검붉은 핏방울이 여기저기로 튀어 오르고, 옷 전체가 핏빛으로 흥건해질 때까지 그녀의 기이한 행동이 계속되자, 그를 흠모해온 계부(繼父)인 국왕은 “저 여자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에 옆에 서 있던 병사들이 떼로 몰려들어 방패로 그녀를 찍어 누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격렬한 움직임이 점차 둔해지고 인파 속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 같은 공포 스릴러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무려 ‘바그너 이후 가장 위대한 독일 작곡가’로 불리는 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00여 년 전 선보인 파격의 오페라 ‘살로메’의 결말이다.

이 오페라엔 인간이 해선 안 될 것들이 여럿 담겨있다. 계부의 요청에 주인공인 살로메가 몸에 걸친 베일을 차례로 벗어던지며 야릇한 몸짓으로 춤추는 장면도 무대 위에서 여과 없이 연출된다. 지금도 쉬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 작품이 1905년 초연 때 예술계에서 환영받을 리 없었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클래식 음악계에선 ‘음란한 오페라’라고 낙인찍힌 문제작이었다. 실제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살로메’ 공연을 27년이나 금지했다.
2018년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 속 한 장면.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룀이 살로메 역을 맡았다. 사진=Clive Barda
2018년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 속 한 장면.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룀이 살로메 역을 맡았다. 사진=Clive Barda
이야기를 보면 누구나 경악할 만하다. 헤롯왕의 의붓딸인 살로메가 춤을 춘 대가로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를 요구했다는 신약성서 속 한 구절이 소재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탐미주의적 경향이 짙게 밴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슈트라우스가 쓴 이 오페라는 살로메를 갈구하는 두 남자의 뜨거운 시선으로 첫 장을 연다. 궁전에서 열린 화려한 연회에선 헤롯왕이 연신 자신의 의붓딸인 살로메에게 추파를 던지고, 궁전 밖에선 근위대장인 나라보트가 살로메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끊임없이 털어놓는다.

바로 그때 정원에 있는 지하 감옥에서 “죄인은 회개하라”는 요한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남편을 살해하고 그의 이복형제인 헤롯왕과 결혼한 왕비 헤로디아스를 겨냥해 외친 말이었지만, 우연히 들은 목소리에 관심이 생겨난 살로메는 나라보트를 시켜 요한을 감옥 위로 끌어 올린다. 달빛 속에 드러난 요한의 모습에 한눈에 반한 살로메가 열렬히 구애하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감옥으로 되돌아간다.

이후 헤롯왕이 원하는 모든 것, 원하면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며 자신을 위한 춤을 춰달라고 요구하자 살로메는 기다렸다는 듯 관능적인 몸짓을 선보인다. 이때 등장하는 음악이 바로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일곱 베일의 춤’이다.

흡족한 헤롯왕에게 살로메가 말한 소원은 ‘은쟁반에 요한의 머리를 가져와달라는 것’. 이에 헤롯왕이 신성한 요한을 죽이면 화를 입을 것을 우려해 다른 소원을 말하라 하지만 집요한 살로메의 요구에 결국 요한의 사형이 집행된다. 이윽고 병사 한 명이 요한의 머리를 잘라서 가져오자 살로메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사랑을 부르짖다 결국 헤롯왕의 명령에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 속 한 장면.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룀이 살로메 역을 맡았다. (c) Tristram Kenton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 속 한 장면.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룀이 살로메 역을 맡았다. (c) Tristram Kenton
‘살로메’의 시그니처 악곡은 단연 ‘일곱 베일의 춤’이다. 관현악곡인 이 작품을 연주할 땐 그 어떤 성악가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로지 신비로운 음향과 관능적인 살로메의 몸짓만으로 청중을 휘어잡는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장대한 팀파니 울림과 날카로운 현, 직선으로 뻗어가는 세찬 금관 선율이 뒤섞이면서 다소 혼란스러운 인상을 남기는데, 불편한 감정이 일어날 때쯤 모든 악기가 음량을 대폭 줄이면서 살로메의 자극적인 몸짓에 대한 주목도를 높인다. 그러면 이내 묘한 음색의 오보에가 짧은 꾸밈음을 긴 음표 앞에 붙여 만들어낸 선율을 연주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끌어낸다. 마치 아랍계 민속 음악과 춤을 엿보는 듯한 이색적인 장면이다.

약음기를 낀 현이 긴 선율을 뽑아내면서 마치 하늘에 거대한 구름이 드리운 것 같은 풍성한 양감을 불러내기도, 이따금 팀파니 주자가 악기를 강하게 내려치면서 심장을 쿵 내려앉게 하는 극도의 긴장감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다채로운 악상 전환을 보여준다.

탬버린, 첼레스타, 마림바, 하프 등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향과 슈트라우스 특유의 반음계 선율은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왈츠를 떠올리게 하는 3박 리듬으로 전원적인 분위기를 살려내다가도 캐스터네츠의 신호를 시작으로 전투적인 분위기로 변화하는 극적인 전개는 청중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후반부에서 트럼펫이 숨을 강하게 몰아쉬며 같은 선율을 반복하는 구간은 마치 앞으로의 비극을 경고하는 사이렌 소리처럼 격렬하다. 이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악센트(특정 음을 세게 연주)를 시작으로 내달리듯 이어지는 현악기의 격앙된 선율과 금관악기와 팀파니가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에너지, 음을 빠르게 떨어뜨렸다 끌어올리면서 강한 세기로 내려치는 마지막 세 개의 화음까지 집중한다면 슈트라우스가 그려낸 욕망과 파멸의 순간을 온전히 맛볼 수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