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풍제지 사태, 또 터질 수 있다
1년 새 17배 폭등했던 영풍제지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검찰이 지난달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4월 라덕연 일당의 주가조작, 6월 바른투자연구소 주가조작에 이어 올 들어 벌써 세 번째다. 국내 증시에서 주가조작은 늘 있었지만, 올해는 여러모로 과거와 딴판이다. 과거 주가조작은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이른바 ‘잡주’를 대상으로 허위 호재를 흘려 주가를 폭등시킨 뒤 6개월 이내에 털고 나오는 게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반면 올해 주가조작은 공통적으로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우량주·자산주를 타깃으로 했다. 별다른 호재 없이 매일 야금야금, 길게는 2~3년간 저점 대비 최대 10~20배씩 주가를 끌어올린 점도 달랐다. 그런 만큼 피해는 더 광범위하고 컸다. 주가조작 적발 후 주가는 최대 10분의 1 토막으로 회귀해 막판 추격 매수한 개인들은 큰 손실을 봤다.

가격 발견 기능이 고장난 증시

많은 증권사가 함께 손해를 본 것도 이례적이다. 증권사들은 만기 없는 차액결제거래(CFD)부터 6개월짜리 신용융자, 초단기 미수거래까지 대규모 신용을 제공했다가 많게는 수천억원 손실을 봤다. 작전 대상 종목이 잡주가 아니라 신용 제공 대상인 우량주·자산주다 보니 발생한 현상이다.

이런 피해는 물론 주가조작 세력의 불법이 1차적 원인이다. 하지만 국내 증시의 가격 발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피해 규모가 확대된 측면도 크다. 유동성을 늘려 주가를 올리는 신용은 허용하면서 주가 이상 과열을 완화하는 공매도는 2년 넘게 제한한 비대칭적 규제가 초래한 현상이다. 코스피200 및 코스닥150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중소형주는 공매도가 불가능해 과열된 주가가 장기간 이어지는 ‘가격 발견 비효율 상태’가 만연할 수 있다.

올해 적발된 총 14개 주가조작 종목 중 영풍제지, 삼천리, 동일산업 등 11개가 공매도 불가 종목인 게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펀드매니저들은 공매도가 허용됐다면 세력들이 이들 종목 주가를 끌어올리기가 훨씬 어려웠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라덕연 사태 관련 8개 종목 중 공매도가 가능했던 다우데이터가 나머지 종목과 달리 올 2월부터 나 홀로 횡보했던 게 좋은 예다. 몇몇 발 빠른 운용사가 다우데이터가 고평가되자 속속 공매도에 나선 결과다.

증권사 신용 관리 더 강화해야

하지만 국내 중소형주 시장의 가격 비효율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선진국지수 편입 요건으로 요구하는 공매도 전면 재개는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는 미뤄질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최근 일부 외국계 기관이 무차입 불법 공매도를 했다가 적발되면서 개인들의 분노가 들끓자 금융당국은 공매도 제도 개선에 들어갔다. 선거 표심을 노린 여당은 아예 공매도를 한시 중단하자고 요구하고 있어 공매도는 정치 문제로 비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결국 증권사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다. 앞으로 또 나올 주가조작 자체를 막을 수 없지만, 신용 관리라도 더욱 철저히 해 투자자 및 자신의 추가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단기과열 종목을 넘어 장기 이상 급등 종목도 과감하게 신용을 줄여야 한다. 과열이 없어도 공매도 불가 종목은 근본적으로 신용을 억제해야 한다. 신용 관리에 실패하면 제2의 라덕연, 영풍제지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