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동료지원가 문석영씨 인터뷰…"내년에도 열심히 장애인 만나고파"
내년 동료지원가 예산안 전액 삭감에 "금쪽같은 사업 폐지 안돼"
국감장 선 첫 발달장애인 "저희에게도 기회 줬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의원님들마저도 안 들어주시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어요.

근데 많이들 공감해주셔서 고마운 마음에 집 돌아가는 길에 많이 울었어요.

"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만난 시각·발달 중복장애인 문석영(31) 씨는 나흘 전 국정감사 참고인 출석 당시를 떠올리며 울컥한 듯 얼굴을 감싸 쥐었다.

문씨는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다.

'동료지원가 사업'은 중증장애인이 상담과 자조모임 구성 등을 통해 다른 장애인의 취업 활동을 돕는 사업이다.

문씨는 지난달 23일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발달장애인이 국감장에 선 것은 문씨가 처음이었다.

그는 국감장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동료지원가로 일하며) 뿌듯하고, 행복하고, 이제는 제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며 "금쪽같은 동료지원가 사업이 절대 폐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2019년 13억5천만원의 예산으로 시작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 지원 사업'(동료지원가 사업) 예산은 2020년 29억5천만원으로 크게 늘었다가 2021년 29억1천만원, 작년 27억7천만원, 올해 23억원으로 점차 줄었다.

급기야 지난 9월 정부는 사업 실적이 저조하다며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씨의 간절한 호소에 여야 의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중증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잘 만들어진 사업을 왜 굳이 없애려 하는 것이냐"고 정부에 따져 물었다.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도 "중증장애인이 보람을 느낀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느냐"며 "보건복지부와 논의해 예산을 다시 살릴 수 있으니 (참고인께서) 마음 편히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응했다.

국감장 선 첫 발달장애인 "저희에게도 기회 줬으면 좋겠어요"
문씨는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서울 강동구의 한 재활원에 맡겨져 그곳에서 25년을 살았다.

2012년부터 10년 동안 반짇고리를 만드는 공장에 다녔지만, 차별과 냉대가 그를 힘들게 했다.

문씨는 "잘못할 때마다 등짝을 때리고 회식을 가더라도 밥을 혼자 먹는 '왕따' 생활이 계속됐다"며 "소심해서 말도 못 하고 집에 들어가 혼자 술을 마시고 샌드백을 치면서 화를 삭이곤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문씨는 지난해부터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했다.

그는 "말하는 것이 조금 어려운 친구들이 자기 나름의 생각을 애써서 내게 표현해주더라"며 "동료 장애인들을 상담해주며 뿌듯했고 내가 쓸모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문씨에게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지난 9월 27일에는 문씨를 포함한 활동가 27명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를 점거하고 예산 삭감 철회를 요구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동료지원가 187명을 대표해 국감장에 서서 여야 의원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문씨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국감에 출석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6일에도 문씨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노동부가 '동료지원가 사업'이 복지부의 '동료상담가 사업'과 중복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탓이다.

이 같은 입장은 장애인을 경제활동 당사자가 아니라 복지서비스의 수혜자로만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문씨는 지적했다.

문씨는 "내년에도 열심히 장애인들을 만날 것"이라며 "이정식 장관님께서도 이런 모습을 봐주시면 이 사람들이 진짜 노력을 많이 한다고 감탄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감장 선 첫 발달장애인 "저희에게도 기회 줬으면 좋겠어요"
문씨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을 보이지 않는 '유령'과 '투명 인간'에 비유했다.

문씨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떨어지는 존재로 보곤 한다"며 "그림 투표용지나 알기 쉬운 (공보물) 책자를 만들어주시면 발달장애인들도 자기 목소리를 더 잘 낼 것 같다"고 말했다.

문씨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씨는 "우리도 지하철을 막고 싶어서 막는 게 아니다"라며 "시민분들께서 우리에 대해 '나쁘다'고만 말씀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몇 분이라도 우리 편을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씨에게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장애인들을 너무 약골로만 보지 마시고 옆에서 '너희도 잘할 수 있다'고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안 해보면 모르는 거잖아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
국감장 선 첫 발달장애인 "저희에게도 기회 줬으면 좋겠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