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민연금 개혁 회의록 늑장공개하는 정부
“정부는 관련 정보와 통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이 연금개혁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만들겠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한 말이다. 연금개혁을 위해 복지부 산하에 재정계산위원회를 출범시킨 지 한 달여 만이다. 복지부는 이전 정부에선 제한적으로만 공개해온 재정계산위 회의록을 매달 전면 공개하겠다고도 했다. 연금개혁 성공을 위해선 무엇보다 국민들이 투명하게 논의 과정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은 ‘빈말’이 됐다. 재정계산위 회의록 공개는 지난 4월 14일에 열린 11차 회의가 마지막이었다. 5월 12일 열린 12차 회의는 발표 자료만 공개됐고 이후 이달 13일 22차 최종 회의까지 10차례 회의는 어떤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재정계산위가 이달 하순께 복지부에 연금개혁 권고안이 담긴 최종 보고서를 제출한 뒤 회의록을 공개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연금개혁안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 과정이 속속들이 알려지면 불필요한 ‘잡음’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연금개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당초 정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에게 연금개혁 필요성을 공론화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재정계산위는 9월 1일 공청회에서 정부에 권고할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연금개혁 시나리오만 18가지나 됐다. 게다가 이후 추가된 안까지 포함하면 최소 20개, 많게는 54개에 달하는 시나리오가 최종 보고서에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정계산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는 여전히 ‘깜깜이’다. 결과적으로 국민들도 왜 연금개혁이 필요한지, 연금개혁을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놓치게 됐다.

국민연금 개혁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득해도 개혁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게다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는 이미 연금개혁에 소극적이다. 연금개혁을 하려면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한데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가 약속대로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연금개혁 논의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면 어땠을까. 더 많은 국민이 연금개혁을 고민하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바람직한 연금개혁 방안을 논의하면서 연금개혁의 동력이 조금이라도 커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