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처럼 사업가 기질 타고난 '약국집 아들'…매출 800억 '잭팟'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올해로 창업 4년 차인 온누리스토어는 지난해 5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는 8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설립 이래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내지 않고, 매년 한 자릿수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쿠팡, CJ올리브영 같은 대형 유통사들이 즐비한 헬스&웰니스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 온누리스토어의 이 같은 성적표는 ‘군계일학’이라고 할 만하다.

온누리스토어의 성장세는 컬리나 야놀자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기업 가치가 조 단위에 이르는 ‘유니콘’도 아니다. e커머스에 뛰어든 스타트업 창업자라면 누구나 입에 올리던 ‘플랫폼’도 표방하지 않는다. 하지만 투자업계에선 오히려 온누리스토어의 ‘조용한 흑자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헬스&웰니스 e커머스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온누리스토어

온누리스토어가 정글 같은 e커머스 업계에서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알려면, 우선 창업자인 박효수 대표의 이력부터 봐야 한다. 1983년생인 그는 김슬아 컬리 대표와 동갑이다. 나이만 같은 게 아니라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서 한솥밥을 먹었다. 박 대표는 2014년 창업해 코로나를 거치며 승승장구하던 컬리의 성장사(史)를 누구보다 면밀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맥킨지를 거쳐 오릭스PE에서 ‘트랜스포메이션(구조조정)’ 전문가로 활약했다. 기업의 부실을 도려내고, 잘 할 수 있는 그 회사만의 경쟁력을 찾아내는 일이다. 기업 구조조정 업무에만 7년의 세월을 투자했다.

사실 박 대표는 창업자로서의 DNA가 끓어 넘치는 유형의 기업인이다. 국내 최대 약국 체인인 온누리약국을 1991년에 만든 박종화 온누리H&C 대표가 그의 부친이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에 가맹점이 2200여 곳에 달한다. 한국형 드러그 스토어의 원조다.

박 대표도 부친처럼 사업가의 기질을 타고났다. 대학 3학년 재학 시절 첫 번째 창업에 나섰다. 한국처럼 교육열이 강한 베트남에 영단어 학습기를 팔겠다며 제품 1000개를 들고 무작정 하노이로 갔다. 당시 하노이 한인 사회에선 이런 얘기가 돌았다. ‘서울에서 온 웬 얼굴 새까만 대학생이 물건 팔겠다며 밥도 굶고 다닌다’. 그 시절 박 대표는 하노이 대우호텔에서 짜장면을 사줬던 한인 기업가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이후에도 연쇄 창업에 도전해 잇따라 결실을 보기도 했다. 2시간에 60만원만 내면 한 커플만을 위한 원테이블 서비스를 해주는 프러포즈 레스토랑을 서울, 대만에 각각 세 개씩 열었다. 고3 수험생을 대상으로 속독학원 사업을 벌이기도 했고, 목동에서 유명한 독립계 웹사이트인 ‘엄알비’라는 맘카페를 창업해 지금도 운영 중이다.

타고난 ‘창업 DNA’…대학 때 영단어 학습기로 해외 시장 도전하기도

박 대표의 이력을 듣다 보면, 2019년까지 그의 창업 본능을 누르고 산 게 용할 정도다. 2019년은 스타트업 세계에선 황금기였다. 박 대표는 “‘미래 가치’라는 마술봉을 현란한 프레젠테이션 기술로 발표할 수만 있으면 동네 옆집 형도 100억원을 투자받던 때”라고 회상했다. 흑자 성장이란 말은 촌스러운 비전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시쳇말로 개나 소나 벤처캐피탈 문을 두드리던 시절, 박 대표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오릭스PE를 나와서 부친 회사에서 사업을 배우던 2019년 말, 박 대표는 이렇게 생각했다. “거품이 곧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캐시플로우(현금흐름)로 슈퍼 그로스(초고속 성장) 곡선을 만들 수 있다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다”

자기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5000만원 자본금만 들고 온누리스토어를 창업했다. 처음 내놓은 상품은 여성 전용 핫팩이다. 제품력에 공을 들인 다음, ‘엄알비’ 등 맘카페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내는 방식으로 완판에 성공했다. 온누리스토어의 성공 방정식 중 하나인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마케팅의 첫 성공 사례다.

핫팩으로 번 돈은 그다음 상품을 개발하는데 재투자했다. 그렇게 해서 본격적인 사업 첫해인 2020년 150억원의 매출을 거둔데 이어 2021년 300억원, 2020년 520억원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 온누리스토어가 판매 중인 브랜드는 20여 개다. 눌러 먹는 활력앰플 프레스샷, 무알코올 마우스워시 테라브레스, 액상 전문 어린이 영양제 차일드 라이프 등이 대표 브랜드다.

흑자 성장의 길쿠팡, 컬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걷다

박 대표가 사업을 영위하면서 고집스럽게 지킨 원칙이 하나 있다. ‘기업을 기업답게’라는 신념이다. “사업의 기본은 사자와 팔자라는 행위의 가치 교환이에요. 이를 벗어난 모든 기업 활동은 비본질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업 때부터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흑자 성장이 기업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7년간의 구조조정 업무를 경험하면서 박 대표가 얻은 경험은 돈의 무서움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어려움에 빠지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때로는 돈이 너무 많아서예요. 외부에서 너무 많은 돈을 투자받으면 기업가는 도전이라는 명분으로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수준의 일을 하게 됩니다. 이 도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기업은 어려움에 빠지고, 이미 투자받은 돈을 회수하기 위한 보상행동을 하면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려면, 욕심을 버리고 번 돈 안에서 재투자를 만들어 낸다는 마음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박 대표의 지론이다. “당장 눈앞에 기회가 보이고, 경쟁자가 차지할 것처럼 보여도 과감히 이를 포기하고 지금 회사가 있는 상황에서의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브랜드에 집중 투자, 마케팅은 구전 효과로

박 대표가 차별화의 핵심으로 꼽는 것은 브랜드, 그리고 브랜드를 키우는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그는 ‘박재범 소주’로 유명한 원소주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원소주를 만든 컬쳐앤커머스의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다. 박 대표가 투자한 브랜드만 50여 개에 달한다.

플랫폼은 수많은 판매자와 더 많은 소비자를 연결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성공한다. 그러려면 막대한 투자금이 필수다. 인지도가 높아야 셀러와 구매자가 몰리기 때문에 마케팅에만 수백억 원의 돈을 쏟는 것도 예사다. 박 대표는 쿠팡, 컬리, 야놀자, 당근마켓 등이 벌이고 있는 이 같은 플랫폼 전략은 너무 위험한 도박이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온누리스토어의 전략은 에코마케팅이나 노티드도너츠 등을 만든 GFFG를 닮았다. 에코마케팅은 은행원 출신인 김철웅 대표(현 안다르 대표)가 구글의 인터넷 광고 전략에 영감을 얻어 창업한 회사다. 국내에 ‘퍼포먼스 마케팅’을 도입해 기존 종합광고대행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에코마케팅도 광고 및 마케팅 대행업을 하면서 동시에 안다르 등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육성한다.

온누리스토어가 브랜드 하나를 출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년이라고 한다. 물망에 오른 10개 아이템 중 시장에 출시된 경우는 많아야 2개 수준이다. 테라브레스만 해도 2020년 출시됐지만, 사전 아이디어는 온누리스토어를 창업하기 이전인 2018년부터 진행됐다.

한국 공식 출시 전 테라브레스는 한국인들에게 직구 시장에서 인기가 있었던 마우스워시 상품이었다. 하지만 테라브레스에는 한국 식약처의 규정상 금지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판매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공식 수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박 대표는 “테라브레스 대표에게 한국 식약처가 승인할 수 있는 성분으로 바꾸어 출시하자고 설득을 거듭했다”며 “거의 1년 동안 다양한 시장 분석과 설득으로 테라브레스의 마음을 바꾸고 결국 업그레이드 포뮬러로 한국에 출시했다”고 말했다. 테라브레스는 현재 올리브영에서도 구강 카테고리 부문 매출 1위다. 온누리스토어는 올리브영의 1차 벤더다. 뷰티 외 부문에선 1차 벤더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온누리약국과의 온·오프라인 통합 채널이 목표

브랜드를 키우기 위한 전략으로 박 대표는 사내 소(小)사장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온누리스토어의 임직원은 100명가량이지만, 사업부는 30여 개에 달한다. 모든 사업부엔 1명 이상의 소사장을 두고, 이들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직접 하도록 했다. 대표와 임원진들은 컨설턴트로서 소사장이 좋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코칭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모든 사업의 존속 원칙은 흑자 성장이다.

박 대표의 꿈은 이제 막 시작이다. 그의 꿈은 원대하다. 헬스&웰니스 부문에서 한국 1등을 꿈꾼다. 부친이 운영하는 온누리약국 체인과의 연계도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다. 박 대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합하는 옴니채널을 구현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