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금이 달라진다…부동산 공시가격 산정 개선한다는데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증여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 등을 산정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되는 지표가 있다. 바로 '부동산 공시가격'이다. 일반인 사이에서 흔히 공시지가로 알려져 있지만,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이나 단독주택의 경우에는 공시가격이 맞는 표현이다. 토지의 경우에만 공시지가로 부른다.

정부가 지난 15일 이같은 부동산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절차에 대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세금 등을 결정지을 때 사용되는 중요한 지표다. 연초에 공시가격이 발표되면 항상 가격 수준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이의가 쏟아져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이다.

부동산 공시제도는 1989년 토지를 시작으로 해 2005년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에도 도입됐다. 정부는 부동산 공시법에 따라 토지와 주택에 대해 매년 1월1일 기준의 적정가격을 공시하고 있다.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질 경우 성립 가능성이 가장 높은 가격'을 적정가격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수도권 아파트 밀집지역.  /한경DB
정부가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수도권 아파트 밀집지역. /한경DB
이 공시가격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기준 총 67개 행정제도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소유한 자산의 규모를 평가할 때 부동산은 이 공시가격이 기준이 된다. 앞에서 언급한 재산세, 종부세 등 세금뿐만 아니라 각종 부담금을 산정할 때도 부동산 공시가격이 쓰인다.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기초생활보장급여, 국가장학금, 근로장려금 등 복지제도의 혜택을 누릴 대상이 되는지 가늠할 때도 사용된다. 소송이나 경매 혹은 토지 보상금을 산정할 때도 공시가격이 기준이 된다.

개인이 소유한 주택이나 토지의 공시가격이 과도하게 많이 산정됐다면 그만큼 많은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또 공시가격이 너무 비싸게 매겨졌다면 기초연금 등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려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정확한 공시가격 산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복잡한 산정 절차로 오류 발생

매년 초 공시가격이 공개될 때마다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복잡한 산정 방법 때문이다. 공시가격을 산정해야 하는 대상이 방대하기 때문에 평가 주체가 나뉘어 있다. 위치와 모양 등에 따라 가치가 천차만별인 토지의 경우 국토부가 일부 기준을 잡을 수 있는 필지를 '표준지'로 선정해 국가 공인 감정평가사를 동원해 공시가격을 평가한다. 이 표준지 가격이 공시된 이후 이를 기반으로 시, 군, 구와 같은 지자체의 담당자들이 가중치를 적용해 개별 토지의 공시가격을 매기는 구조다. 올해 초 공시 기준으로 이런 표준지가 56만필지, 개별 토지가 3479만필지에 이른다. 단독주택도 비슷한 방법으로 25만가구에 이르는 '표준주택'에 대해 한국부동산원이 공시가격을 내놓고, 이를 기반으로 지자체 담당자들이 384만 개별 주택에 대한 가치를 평가한다.
2023년 부동산 공시제도 운영현황.                                       국토교통부
2023년 부동산 공시제도 운영현황. 국토교통부
이 대목에서 산정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생긴다. 표준지나 표준주택의 가격 산정이 잘못됐을 경우 이를 기반으로 한 개별 토지나 개별 주택의 가치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 또 표준지나 표준주택의 공시가격이 제대로 평가됐다 해도 일선 시·군·구 공무원의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평가하는 과정에서 재량권을 과도하게 활용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공시가격이 나오기도 한다.
부동산 공시가격 산정 절차.                  국토교통부
부동산 공시가격 산정 절차. 국토교통부
이에 비해 아파트는 비교적 균일한 형태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평가가 쉬운 편이다. 이에 올해 공시 기준으로 1486만가구에 이르는 공동주택 모두에 대해서 한국부동산원이 공시가격을 조사하고 산정한다. 한국부동산원 520명이 공동주택 평가를 전담하다 보니 개인적인 실수 등으로 인한 평가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1인당 평가한 물량이 약 2만8000가구에 이를 정도로 많다. 실제로 서울 성수동에 고급 공동주택인 갤러리아 포레는 2020년 담당자가 한 동에서 층별로 모두 같은 가중치를 적용하며 공시가격이 모두 같게 산정되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 성동구 성수동 고급 공동주택인 갤러리아 포레의 경우 조사자가 가구별 층별효용비를 모두 동일하게 적용했고, 검증 과정에서도 걸러지지 않아 2020년 2개 동 230가구 공시가가 모두 정정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자체와 상시 검증체계 구축

국토부는 해마다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공시가격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15일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올해 서울을 시작으로 지자체와 협업해 공시가격 검증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정부가 공시하는 부동산 가격 산정 전반을 지자체가 상시 검증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내 한 단독주택 밀집 지역의 모습.  /한경DB
정부가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내 한 단독주택 밀집 지역의 모습. /한경DB
정부는 그동안 쌓아온 전문성을 인정해 한국부동산원이 공시가격 업무를 계속하되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이다. 공시가격 검증센터가 부동산에 대한 특성 정보를 제공하고, 가격산정 과정을 모니터링한다. 또 가격 균형 협의 절차에 참여하고 부동산원이나 감정평가사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가격산정 정보를 제공하는 협업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서울시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2~3개 다른 광역지자체로 확대해갈 방침이다.

이의 제기된 공시가격이 공정한지 판단하는 주체도 바꾸기로 했다. 지금은 부동산원이 주택 공시가격을 조사·산정하고, 검증 업무도 함께하는 사실상 '셀프 검증' 체계로 운영된다. 정부는 지자체 공시가격 검증센터에 이의 신청에 대한 1차 검토 권한을 부여하고,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가 심의하도록 절차를 바꾸기로 했다. 선수와 심판을 분리해 공정성을 보다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층·향·조망 등에 따른 등급 공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부터는 아파트의 층, 향, 조망 등 가격 결정 요인에 등급을 매기고 이를 단계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로열층(통상 중간층)을 기준으로 층별 가격 차이를 나타내는 비율인 '층별효용비'가 가구별로 공개되지 않아 공시가격을 받아든 소유주가 반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토부는 내년 상반기에 등급화가 상대적으로 쉬운 층(최대 7등급)·향별(8방향) 등급부터 먼저 공개한다. 조망(도시·숲·강·기타 등)과 소음(강·중·약) 등 조사자 주관이 적용되는 항목에 대해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2026년까지 등급 공개를 추진한다.
공동주택 조사 산정 인력 확충 계획.                    국토교통부
공동주택 조사 산정 인력 확충 계획. 국토교통부
공시가격 산정 때 이용하는 기초 자료도 보강해 정확성을 높이기로 했다. 정부는 지자체가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주택의 층, 면적, 구조 등 물리적 특성의 변화를 수시로 직접 갱신하는 '과세대장'을 공시가격 산정에 활용할 계획이다. 조사자에게는 현황과 건축물대장 등 공부(公簿)상 기록이 일치하는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도록 해 현장조사를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 인력을 늘린다. 올해 산정 인력을 650명으로 작년(520명)보다 25% 늘리고, 2025년까지 690명으로 33% 확대할 계획이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산정모형(AVM) 등 인공지능(AI) 분석을 공시가격 산정 때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