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 있는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에 있는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동산 시장이나 금융 시장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단어입니다. 단어만 봐선 무슨 뜻인지 유추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요. 아파트 짓는 사업을 주도하는 시행사가 사업 허가권을 따야 하고 아파트를 지을 땅도 확보해야 합니다.

시행사들은 돈이 어디서 나서 자금을 마련할까요. 회사가 보유한 자금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브릿지론'이라는 금융 상품을 이용합니다. 브릿지론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는 돈입니다. 사업 초기 단계에서 본 사업으로 넘어가기 위해 받는 단기 고금리 대출입니다.

브릿지론을 받은 시행사는 땅을 사는 등 사업 초기에 필요한 것들을 진행합니다. 이후 사업권을 따내고 시공사가 합류해 시공사의 신용등급을 통해 보증받아 다시 돈을 빌립니다. 본 PF에 진입한 것입니다. 통상 시공사는 시행사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보유해 더 낮은 금리도 돈을 빌릴 수 있습니다. 시행사는 시공사를 통해 돈을 빌려 사업 초기 받았던 브릿지론을 갚습니다.

가진 돈이 없는 시행사가 큰 프로젝트를 일으킬 수 있는 PF는 최근 부동산 호황기에는 그야말로 ‘마법’ 같았습니다. 적은 자본으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고 사업에 따른 위험은 시공사와 분양을 받는 사람들과 분담합니다. 시장이 호황이었다 보니 높은 분양가에 상품을 내놔도 불티나게 팔리면서 수익을 냈습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한경DB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한경DB
하지만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증권사들은 더는 돈을 풀지 않는 상황입니다. 돈을 빌려달라는 곳들은 많지만, 투자금 회수를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브릿지론을 받은 곳들은 마음이 더 급해졌습니다. 얼른 본 PF로 넘어가 빌린 브릿지론을 갚고 분양을 진행에 수익을 내야 하는데 시장 분위기가 바뀌다 보니 금융기관이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입니다.

PF 사업을 중점으로 두고 있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PF 시장이 얼어붙은 게 사실"이라면서 "대형 증권사들은 PF에 대부분 손을 뗐다.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호황기엔 '마법'으로 통했는데…부동산 PF 악몽될라 '초비상' [돈앤톡]
PF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정부가 나섰습니다. 지난달 말 정부는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통해 PF 대출 보증 규모를 늘리기로 했습니다. 현재 주택도시보증공사(HUG)·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의 보증 규모는 현재 15조원인데 이를 25조원으로 늘리고 PF 대출 보증의 대출 한도를 전체 사업비의 50%에서 70%로 확대됩니다. PF 대출 보증 심사기준도 완화한다. '시공사 도급순위 700위'로 돼 있는 기준을 폐지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다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언 발의 오줌을 누기'라는 게 PF 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정부는 돈을 빌려주고 일단 내년까지 버텨보라고 합니다. 금융사에서 만기를 연장해주고 이자도 나중에 내라고 합니다. 결국엔 언젠가 내야 할 돈입니다. 시행사가 못 내면 시공사가 내야 합니다. 시공사도 못 내면 금융사가 부실해집니다. 도미노처럼 무너진 것입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이미 PF 시장은 얼어붙었다"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대책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년 총선까지는 PF 사태를 일단 막아놨다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선 '나 몰라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해결할 방법을 내놔야지 뒤로 미룬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면서 "현재 시장 상황이 계속된다면 1년 뒤엔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도산하는 시행사, 시공사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한편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권(은행·보험·여신금융·저축은행·증권)의 지난 6월 말 기준 PF 대출 잔액은 133조1000억원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 중입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