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경기 의정부와 서울 상계동 경계에 있는 ‘수락리버시티’ 아파트 단지 공원 내에 설치된 안전비상벨. 노원구가 장착한 비상벨(왼쪽)은 작동했으나 의정부시가 설치한 비상벨(오른쪽)은 고장 나 있었다.  한명현 기자
지난 8일 경기 의정부와 서울 상계동 경계에 있는 ‘수락리버시티’ 아파트 단지 공원 내에 설치된 안전비상벨. 노원구가 장착한 비상벨(왼쪽)은 작동했으나 의정부시가 설치한 비상벨(오른쪽)은 고장 나 있었다. 한명현 기자
위급 상황 시 길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112로 연결되는 ‘안전비상벨’ 중 상당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먹통비상벨’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사설 방범 업체 등으로 연결되는 ‘엉뚱비상벨’도 적지 않았다. 안전비상벨의 체계적 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안전비상벨은 전국에 6만6700개가량이 설치돼 있다. 안전비상벨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여성안심벨’ ‘비상호출벨’ ‘가로변안심벨’ 등 다양한 명칭으로 도로나 공원 등에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112로 연결돼 경찰이 출동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요즘엔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경찰이 아닌 다른 곳에 연결되는 곳이 많다.

경기 의정부 장암동과 서울 상계동 경계에 있는 ‘수락리버시티’ 아파트 내 공원의 경우 400m 길이의 개천을 따라 조성된 공원엔 안전비상벨 다섯 개가 설치돼 있다. 노원구와 의정부시가 두 개와 세 개씩 설치했다. 의정부시가 설치한 비상벨 세 개 중 두 개는 버튼을 누른 뒤 15초 뒤 의정부시 CCTV 통합관제센터로 연결됐고, 나머지 하나는 작동하지 않았다. 노원구가 관리하는 비상벨은 작동은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경찰에 직접 연결된 안전비상벨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안심벨' 관리 제각각…"눌러도 경찰 안와요"
경기 광명 철산동의 한 근린공원 안전비상벨은 작동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종림 씨(62)는 “CCTV나 비상벨이 고장 나는 경우가 있어 민원을 넣어도 수리되는 데 몇 달의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경기 성남 금광동에 있는 안전벨은 엉뚱하게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연결됐다. 일부 비상벨은 사설 방범 회사에 연결되기도 했다. 이럴 경우 중간에서 상담자가 대화를 나눈 뒤 112로 대신 신고한다. 한 사설 방범 회사 관계자는 “긴급 상황이어도 경찰이 바로 출동하긴 어려운 시스템”이라며 “휴대폰을 통해 직접 신고하는 게 빠르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설치 대수 등 실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비상벨 관리 부서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부서 간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기 수원의 경우 도시안전통합센터, 수원시 지역경제과·복지정책과, 화성사업소 문화유산시설과, 권선구청 생활안전과 등 약 7개 부서에서 나눠 관리한다. 경기 화성시 관계자는 “공원, 화장실, 도로 등 관리 부서가 여러 곳이어서 필요할 때마다 설치한다”며 “총 몇 개의 비상벨이 설치돼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준이 없다 보니 비상벨 설치 대수도 천차만별이다. 행안부 통계에 따르면 인구수와 도시 면적 수가 비슷한 경기 성남(141.7㎢·97만 명)과 고양(286㎢·108만 명)은 비상벨 설치 개수가 성남은 2617개인 데 반해 고양은 169개에 그쳤다. 경찰 관계자는 “방범 시설의 경우 경찰이 직접 설치 등에 관여하지 못한다”며 “경찰도 전국적으로 비상벨 개수뿐 아니라 어떻게 운영되는지 실태 파악을 전혀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어렵게 연결되더라도 헛걸음하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에만 비상벨 오인·오작동 건수가 9만4021건으로 집계됐다. 비상벨을 장난으로 누르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휴대폰 112 신고와 달리 추적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비상벨의 오인·오작동이 경찰의 업무를 사실상 방해하고 있다”며 “시민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통일된 방범시설 관련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철오/김동주/한명현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