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급증…은행 '영업비밀' 까는 예대금리차 공시법 힘 받나
금융업종 투자자들은 여타 투자자들에 비해 ‘실적 개선’이라는 호재를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바라본다. 규제산업인 은행업의 특성상 단기간의 호실적이 되려 규제 강화라는 악재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 대출과 예금 상품에 부과하는 금리를 공개하도록 하는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는 금융당국이 은행업종을 압박하는 간접 규제의 한 수단이다. 은행연합회는 2022년부터 금융위원회 고시에 따라 각 은행의 대출금리와 저축성수신금리, 그리고 이에 따른 예대금리차를 공시하고 있다.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받는 이자와 고객으로부터 예금을 받았을 때 지급하는 이자를 각각 알려 ‘이자놀이’를 간접적으로 압박하겠다는 취지다.

정치권에선 이 예대금리차 및 금리정보 공시를 더욱 세분화해, 각 은행이 개별 상품별로 설정한 목표이익률까지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들이 발의되어 있다. 지난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올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 야권 정치인들이 주로 대표발의를 맡았다.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 개요>
  • 악재 예상 기업: 기업은행 KB금융 BNK금융지주 신한지주 우리금융지주 DG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JB금융지주 카카오뱅크 제주은행
  • 발의: 박주민 의원실(의원실: 02-784-8690),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원실:02-784-1845)
  • 어떤 법안이길래: 은행별로 발표되는 예대금리차 및 금리정보 공시에 기준금리와 가산금리를 분리해 공시하고, 가산금리의 세부항목인 은행의 목표수익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함.
  • 어떤 영향 주나: 금리산정체계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 및 금융당국의 정책적 개입이 수월해져 은행에 대한 일종의 대출이자 상한 규제로 작용할 전망.

은행업계에선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가계대출 및 이자부담 완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관련 법안의 입법에 나서면 은행권의 실적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은행들이 저신용 금융소비자를 대상으로 대출을 축소하며 금융불평등이 심화되는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리 인상 속 은행 실적이 부른 투명성 논란


은행의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치솟은 대출금리에 비해 예금금리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오른다는 불만이 나오고, 코로나19 시기 급감했던 은행권 실적이 크게 개선되자 “은행의 금리 산출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은행은 대출금리를 결정할 때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가감조정금리를 합산하는 방식을 취한다. 기준금리는 말 그대로 은행이 자금을 조달할 때 지불하는 가장 기본적인 비용을 뜻한다. 가산금리는 업무원가와 리스크·유동성·신용 등 각종 프리미엄, 목표이익률과 기타 법적 비용 등을 합산한 개념이다.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대출창구에서 한 고객이 대출상담을 받고 있다.  /김병언 기자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대출창구에서 한 고객이 대출상담을 받고 있다. /김병언 기자
박 의원과 장 의원의 법안은 현행 은행연합회 자율규제로 규정하고 있는 기준금리 및 가산금리의 대표적인 내용을 법률에 각각 명시하고, 가산금리를 결정하는 세부항목을 각각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금융권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은 목표이익률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 조항이다.

박 의원은 "은행들은 대출수요를 억제할 필요가 있을 때는 가산금리를 인상하면서도, 대출문턱을 낮출 때는 가산금리를 낮추지 않고 대출한도만 조정하는 방식으로 상향된 목표이익률을 달성하려 한다"며 "가산금리 세부항목을 공시해 은행 간의 투명한 가격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권 속살 다 드러내면 정상적 시장작용 어려워

은행권에선 강한 반발이 나온다. 금리는 기본적으로 정부개입이 아닌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를 공개해 정부의 개입으로 조정하면 부작용이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은행연합회는 지난달 발표한 '은행산업의 역할과 수익성' 브리핑을 통해 국내 은행업이 중금리 신용대출을 대폭확대하고 있고, 이익성은 오히려 크게 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의 대출 집행은 지난 15년간 3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10조원대에 머물렀다.

가산금리 세부항목 공시로 인해 대출금리 산정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시장 작용이 아닌 금융당국이나 정치권의 입김이 확대되면 오히려 금융소비자간의 불평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서울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연합뉴스
서울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연합뉴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예대금리차는 최근 3년간 증가하는 추세에 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책적 압박이 은행을 향한 일종의 간접적 대출이자 상한 규제로 작용하면 (은행들이)고신용자 중심의 대출로 선회하며 신용등급 간의 대출여력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미국, 일본 등 예대금리차가 집계되지 않는 국가들을 제외하면 한국의 지난해 기준 예대금리차는 2.55%포인트로 홍콩(5.05%포인트), 스위스(2.94%) 등보다 낮은 수준이다.

가계부채 급증하자 … “국감 지나면 입법 동력 붙을수도

은행의 예대금리차 공시제도를 세부항목까지 확대하고, 이를 통해 대출금리 결정 과정을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은 야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은행권의 반발과, 금융당국의 신중론이 겹치며 본격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투명성 개선이라는 예대금리차 공시제도 확대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목표이익률 등 세부항목의 공개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입장에서 "세부항목 공시는 결과적으로 은행의 원가내역을 공개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해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외부 모습.  /김범준 기자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외부 모습. /김범준 기자
금융감독원도 "대출 가산금리의 산출방식이 복잡하고, 상품 및 차주별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되는 만큼 가산금리 세부항목 공개가 실제 소비자 편익을 크게 높이지 못할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변수는 이번달 중으로 실시되는 국정감사다. 한 국회 정무위원회 보좌진은 "가계부채 급증에 대한 정치적 우려가 큰 만큼 이번 국감에서 대출금리 문제는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며 "여기서 의원들이 공시제도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형성한다면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법안 통과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