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아트페어와 한국 미술계의 미래를 위한 K씨의 조언

프리즈 아트페어, 현대미술의 게이트 키퍼

적어도 지난 세기 후반 이후의 글로벌 미술은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차이의 한 중심에 글로벌 아트페어가 있다. 1967년 국제적 성격을 띤 쾰른 아트페어(Art Cologne)로 시작된 글로벌 아트페어들이 붐을 이룬 시기는 2000년 즈음 붐을 이뤄, 현재 약 160여개로 추산되는 글로벌 아트페어가 개최되고 있다.

국내는 7개 정도가 있다.1) 그것들 가운데 최근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프리즈 아트페어다. 이런 추세로 볼 때, 지난해(2022)에 이은‘프리즈 서울’의 개최가 한국 미술의 세계진출에 있어 기념비적인 행보로 간주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늘 그렇듯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며, 현상적 성과 이면 곧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거나 어떤 이유에서건 다뤄지지 않는 진실이 있게 마련이다. 프리즈 아트페어도 예외가 아니다.

프리즈 아트페어에 관한 한, 무엇보다 그 확장 속도가 경이로울 지경이다. 불과 20년 만에 방문객 수, 참가 갤러리들의 명성, 연계된 예술행사 등에서 프리즈 아트페어는 현대미술시장 뿐 아니라 현대미술 자체의 위계질서 내에서 초 상위의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33년이나 늦게 출발했지만, 바젤아트페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도약했다.
프리즈 아트페어와 한국 미술계의 미래를 위한 K씨의 조언
이는 프리즈 아트페어의 게이트 키퍼로서의 기능과 영향력의 괄목할만한 증대를 의미한다. 유명한 딜러, 갤러리, 비평가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것이기에 프리즈 아트페어가 선정한 작가나 작품은 ‘모든 의심을 불식시킬 만큼 신뢰할만한 것으로 간주된다. 프리즈의 선택은 구매계층 뿐 아니라 미술계의 내부 전문가들까지 설득한다. 높은 명성을 가진 아트페어가 소개하고, 지시하고, 선정하는 것이 더 큰 권위를 지닌 것이 되는 것이다. “아트페어가 예술작품의 '감정과 봉헌'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있는 것이다.”2) 불과 20년 만에, 높은 국제적 수준의 작가, 작품의 선별 기준이 그 관문을 통과하는가의 여부에 달리게 된 것이다. 프리즈 아트페어의 속도, 정확히 하자면 현대미술의 게이트 키퍼로서 영향력 확보의 속도가 가공(可恐)할만한 것인 이유다.

중요한 것은 열역학이다. 권위가 이 정도로 뜨거운 질주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 프리즈 자체에서? 아트페어의 상업주의를 넘어 질(質)을 중시하는 실험적 경향을 수용하는 컨텐츠 때문에?3) 하지만 신진작가 위주의 페어 구성이나 실험적 경향을 프리즈만의 차별적인 전략으로 보기 어렵다. 아트 바젤도 2000년부터 ‘아트 언리미티드(Art Unlimited)’섹션을 마련해 실험적인 미술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프리즈의 마케팅 전략도 그 자체로는 새로울 것이 없다. 예컨대 커피 브랜드 일리의 팝업스토어, 영국 쇼핑몰 매치스 패션의 이벤트, 페어 파트너 로얄 살루트 라운지 등은 이 분야에서 식상한 접근 방식들 가운데 하나다.
프리즈 아트페어와 한국 미술계의 미래를 위한 K씨의 조언
프리즈 아트페어의 글로벌 미술의 게이트 키퍼로서 빠른 권위 확보를 이끈 결정적인 두 개의 역학적 출처가 있는데, 첫째는 다국적 기업과 금융 자산과의 결사체 수준의 협업이고, 둘째는 영국 정부의 노골적인 정책적, 제도적 지원이다.

먼저 글로벌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다국적기업들과 그 주변부의 신흥 부자들,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을 운용하는 금융계 자산과의 결사체 수준의 긴밀한 협업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빠른 글로벌 덩치 키우기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을 터다. 2004년부터 프리즈 아트페어의 메인 스폰서로 합류해, 2012년 이후 프리즈 마스터즈까지 후원하는 도이치 뱅크는 이를 전담하는 ‘프리즈 재단(Frieze Foundation)’을 별도로 설립해 운용하고 있다. 도이치뱅크는 1997년 ‘도이체 구겐하임 베를린 미술관’(Deutsche Guggenheim Berlin) 개관, 2005년부터 네덜란드의 ‘유럽 아트 페어’(The European Fine Art Fair. TEFAF), 2010 년부터 ‘아트 홍콩’(Art HK)을 협찬 중이다.

프리즈 신화에 있어 결정적인 두 번째 요인은 영국 정부의 노골적인 지원정책으로, 2003년 에 조성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프리즈-테이트 기금(Frieze-Tate Fund)’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기금의 용도와 목적은 관립 기관인 테이트 미술관이 매년 프리즈 아트페어에 출품된 신진작가의 작품을 매입함으로써, 프리즈 브랜드의 위상과 매출실적을 동시에 담보하는 전술적인 것으로, 이런 용도의 기금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4)

한국 청년 작가들과 한국 미술계의 미래를 위한 K씨의 조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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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한국 청년 작가들과 한국 미술계의 미래를 위한 K씨의 조언은 사뭇 숙연했다. 물론 결론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니, 예술의 상업화니 세속화니 하며 연연하기보다는 더 많은 국제 스타, 더 많은‘백남준’을 제조하는 기획, 글로벌 미술의 전선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세 가지 지침이 강조되었다. 작가를 스타로 키우는 비평풍토를 다질 것, 장기적 후원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할 것, 작가라면 백남준이 자신의 비밀 병기로 자처했던 ‘강한 이빨’을 탑재할 것!

백남준의 강한 이빨론: 외래 사조나 영향에 연연하지 말고 “무엇이든 씹어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백남준의 작가론. 실제로 백남준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세계 주요 일간지 독파를 통해 정치뿐 아니라 월가 주식시세와 여성 패션에도 빠삭했다.

K씨의‘국제스타 빠르게 만들기’레시피는 “자신의 실험미술을 이해시키는 유연한 전략가가 되라”에서 “자기 작품의 대변인이 되어야 국제적 스타 작가로 성장할 수 있다”에 이르기까지 주-욱 이어진다. 진정성은 느껴지지만, 이러한 조언에는 생각보다 큰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작가와 스타의 등치, 치열한 실험(가)과 유연한 전략(가)의 동거가 가능한 사건일까?

국제스타 빠르게 만들기는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미술의 주동력장치였다. 미국은 그 터빈을 돌려 앤디 워홀과 장-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같은 팝아트의 스타들을 키워냈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를 동반하는 추상회화의 신화도 잊지 말자. 헐리우드 영화산업을 이끌었던 문화전략을 고스란히 현대미술 생산의 글로벌 표준이 되었던 것이다. 스타의 짧은 흥행주기와 높은 위험 프리미엄, 초고가(超高價) 거래의 담보 같은 속성은 전후 문화자본주의의 교과서적 전략이다.
프리즈 아트페어와 한국 미술계의 미래를 위한 K씨의 조언
그렇기에 한국미술의 미래에 대해 K 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K씨는 1990년대 이후 활발해진 기획전과 신진, 청년 작가들의 등단이 수월해지고 작가층이 두터워졌다는 사실에 고무되었지만, 마냥 기뻐만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모르지 않았다. 결국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하루아침에 스타 만들기”글로벌 시스템의 그늘에 가려지고 말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K씨는 다음과 같은 역설적인 격려로 조언을 끝맺는다.

“유의할 것은 단시간 승부보다 장거리 선수의 인내와 확신으로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다.”

모순된 주장이다. K씨가 말한, 피할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하는 ‘국제스타 빠르게 만들기’시스템은‘장기간에 걸친’, ‘꾸준히’, ‘인내’, ‘정진’ 같은 미덕을 몹시 혐오하고 있는 힘껏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 안에서 신진작가들의 더딘 예술적 성숙을 기다리는 것은 비효율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퇴행적 행동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성은 최소 비용으로 조작적 정의가 가능한 매개변수들 가운데 하나로, 경제성을 상회하는 개념이 결코 아니다.

이 시스템의 희생자, 즉 ‘별들의 전쟁’에서 소모품이 되지 않기 위한 경쟁이 이른 시기에 종료되어도 무방한 이유다. 영국의 yBa 작가들을 보라. 그들 대부분은 30대 초반에 모든 것을 이루고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 시스템은 예술성의 더딘 숙성 속도를 단지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적 성숙 자체를 믿지 않는 것이다. 높은 정신적 성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소실(消失)된 이 시대의 슬픈 초상이다.

K씨는‘국제스타 빠르게 만들기’국제 시스템의 장점으로 대중이 미술을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는 것을 든다. 그렇다면 대중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이미 워홀이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당신이(스타라면) 어떤 사기를 쳐도 문제가 없다. … 당신은 유명하며 따라서 아무도 당신을 사기꾼으로 매도하지 않는다. 당신은 여전히 창공을 날 수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스타이기 때문이다.”(앤디 워홀) 미술평론가 벤아무-위에(Judith Benhamou-Huet)는 대중의 취향에 대해 복잡하게 덧칠하는 것의 함정을 피하면서 다음과 같이 간추린다:“단순하게 말해서, 하나의 신화를 탄생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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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와 미술시장이 술에 물 탄 듯 뒤섞이는 탈경계 현상의 정점에 프리즈 아트페어의 약진이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작가를 같은 해에 개최되는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만나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미술관과 시장의 경계도 허물어졌다.(하긴 제대로 작동한 적이 있기나 했던가) 미술관들은 지역을 등진 채 예술의 주된 고객인, 고가의 미술품 구매력과 의사를 지닌 구매자 집단을 통제하는 글로벌 시스템 안으로의 이동을 서두른다. 그것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글로벌 아트페어와의 동조를 스스로 재촉하면서.

K 씨 같은 전문가들의 조언이 범하는 오류는 비평의 풍토와 국가의 정책도 결국 시스템의 일부로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습관적으로 누락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 시스템 안에서 비평은 거래되는 것들의 예술성을 담보하는 권위의 증여로, 즉 가치에 대한 날선‘검증’으로서가 아니라 딜러와 갤러리, 작가의 브랜딩을 위한 기술로 오작동하고, 국가정책은 시장정책의 하위 메뉴로 재배치된다.

무엇보다 이 시스템은 다수 작가가 스타 작가가 되는 것을, 다수의 갤러리가 스타 작가의 생산기지가 되는 것을 오류로 간주하고 그 수를 엄격하게 통제할 것이기에, (대)다수의 신진, 청년작가들이 아트스타의 그림자 뒤로 사라지는 시간이 더 앞당겨지게 될 것임이, 적어도 현재로선 분명해 보인다.7)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국 청년 작가들과 한국 미술계의 미래에 대한 제대로 된 조언은 무엇인가?
1) 정종효. 「세계 아트페어 동향과 한국 아트페어의 전략」, 『유럽문화예술학논집』, n.13, 2016, p.81.
2) Soo Hee Lee & Jin Woo Le, Art Fairs as a Medium for Branding Young and
Emerging Artists: The Case of Frieze London, The Journal of Arts Management, Law, and Society, 2016, p.102.
3) 최병식. 『미술시장과 아트 딜러』. 동문선, 2008, p.157.
4)권선영. 「현대미술의 유통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축을 위한 산업적 가치분석 연구」. 명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0, p.185.
5)2001년 1월호 ‘월간미술’에 실린 글 「청년 작가들과 한국 화단의 미래」에서 인용.
6)Judith Benhamou-Huet, Art Besiness 2, ed. Assouline, 2007, p.93\
7)K씨. 2001년 1월호 ‘월간미술’에 실린 글 「청년작가들과 한국화단의 미래」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