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둔 뒤 해외 경쟁업체로 바로 옮기지 않았더라도 우회 취업이 의심된다면 전직을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 간 인재 유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기술유출 수법 또한 대담하고 교묘해지는 터라 그렇다. 2009년부터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핵심공정 그룹장으로 일했던 A씨는 지난해 1월 퇴사한 뒤 소형 의료용 레이저 치료기기를 생산하는 한 중국 업체에 취업했다. 하지만 A씨의 경력과 급여 수준을 고려할 때 직원 7명에 자본금이 1000만위안(약 19억원)인 영세업체에 들어간 것은 경쟁업체에 우회 취업한 것으로 의심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재판부는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경제와 안보가 둘이 아닌 시대에 인재·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한 경각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2018~2022년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국내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93건으로, 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국가핵심기술이 33건이었다. 이로 인한 피해액은 2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유출된 기술을 보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자동차·정보통신 등 첨단 주력산업이 주를 이뤘고, 중견·중소기업(55%)과 대기업(35%)이 따로 없었다.

우선 기업의 더욱 철저한 인재관리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한 기업에 몸담았던 전문가가 인사상 불만 등을 이유로 기술을 빼돌리는 일이 적지 않다. 지난 6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최모씨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에서 일한 메모리 반도체 공정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는 반도체 제조공간에 불순물이 없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기술인 BED(basic engineering data)와 공정 배치도, 설계도 등을 통째로 빼돌려 중국 시안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다가 적발됐다.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필사적인 한국의 경쟁국들은 이런 인사들을 노린다. 핵심 인력 매수, 협력업체 활용, 공동연구를 가장한 기술 유출, 리서치 업체를 통한 기술정보 수집, 인허가를 빌미로 한 자료 제출 요구 등 경로와 방법도 다양한 만큼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된다. 제1의 경계 대상은 중국이다. 정보당국이 더 긴장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