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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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만원으로 피카소의 진품 그림을 산다.”

2018년부터 우후죽순 등장한 미술품 조각투자 회사들은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투자자를 불러모았다. 명작의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르니, 여러 사람이 공동 구매한 뒤 작품을 되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그럴듯한 설명이 뒤따랐다.

때 마침 2020~2021년 미술시장이 호황기에 들어가면서 미술투자 수익률이 치솟고 돈이 몰렸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조각투자를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으로 인정하며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 업계에서는 ‘미술품 조각투자 전성시대가 곧 열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1호 조각투자 상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난 8월 미술품 조각투자 업체 중 처음으로 금융당국에 증권신고서를 낸 투게더아트(서비스명 아트투게더)는 제출 20일 만에 신고서를 자진 철회했다. 9월까지 증권신고서를 내겠다던 테사·서울옥션블루(서비스명 소투)·열매컴퍼니(서비스명 아트앤가이드) 등도 일정을 연기했다. 미술품 조각투자 시장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문제는 ‘미술품 가격 산정’

조각투자 상품을 만들어서 투자자를 모집하는 건 주식시장에 기업을 상장(IPO)하는 것과 비슷하다. IPO 작업의 핵심은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했는지 여부다.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들여다보는 대목이다. 그래야 일반 투자자들이 가치가 뻥튀기된 기업에 투자하는 걸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각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자 입장에선 작품 가치가 제대로 매겨졌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미술 작품의 적정 가치를 산정하는 건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같은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도 제작 연도와 크기, 소장 이력과 구입처, 시장 상황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데다 시장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일반화할 수 있는 기준이나 정량적인 평가 지표조차 없다. 최근 몇 년간 공개 경매에서 비슷한 작품이 팔린 기록을 참조해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만 있을 뿐이다. ‘부르는 게 값’이니 전문성이 없는 투자자는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바가지를 쓰기 쉬운 구조다.

투게더아트의 증권신고서가 금융당국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도 작품 가격에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게더아트는 미국 작가 스탠리 휘트니의 ‘Stay Song 61’ 가격을 7억2000만원으로 산정했다. 지난 10년간 경매 기록을 참조했고, 믿을 만한 거래처에서 구입한 점을 감안해 가치를 평가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술계 일각에서 "미술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든 걸 감안할 때 너무 높게 책정한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자 꼬이기 시작했다.

정답이 없는 만큼, 미술품 가격 산정은 누가 무슨 근거로 매겼는지가 중요하다. 이번 작품의 경우 외부의 한 감정평가법인이 가격 산정을 맡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투게더아트의 모회사인 케이옥션이 자문을 제공했다는데 있다. 투게더아트 관계자는 “케이옥션과 투게더아트는 서로 분리된 법인인 만큼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도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누가 봐도 이해상충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객관적인 평가 방안 마련돼야”

테사와 서울옥션블루, 열매컴퍼니도 투게더아트와 마찬가지로 가격 산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역시 9월 중 금융당국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모두 10월 이후로 일정을 공식 연기한 상태다. ‘연내 제출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믿을만한 기관에 가격 감정을 의뢰하고 싶지만, 맡길 데가 없다”는 게 미술품 조각투자 회사들의 하소연이다. 한 조각투자회사 관계자는 “법적 요건을 충족하려면 감정평가법인에 미술품 감정을 맡겨야 하는데, 대부분의 감정평가법인이 부동산 전문이라 미술은 모른다”고 했다. 해외 주요 조각투자 회사들처럼 미술품 전문 감정평가사에 감정을 맡기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전문성 없는 감정평가기관에 미술품 가격 산정을 허용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격산정에 헛점이 있으면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 평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술품 조각투자 시장이 활성화되기는 어렵다는 게 미술계 안팎의 관측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미술품 조각투자라는 투자 방식이 지난해 처음 제도권에 편입된 만큼 기업과 제도 모두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며 “추가로 제출되는 증권신고서들을 보면저 제도를 보완해 나가겠다”고 했다.

성수영/선한결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