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으로 주택가격 산정…업계 "보증금 반환 규모 조단위 달해" 주장

정부가 임대사업자의 임대보증금보증 가입 요건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수준으로 강화하기로 한 가운데 일반 매입임대사업자에 이어 임대아파트를 신축해 장기 임대사업을 하는 건설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강화된 보증 가입 요건을 맞추려면 임대보증금을 낮출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건설사가 임차인에게 반환해야 할 보증금이 '조단위'에 이를 정도로 막대해 유동성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2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일 임대사업자의 임대보증금보증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임대보증금보증 가입요건 강화에 건설임대 사업자 '날벼락'
현재 등록 임대사업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임대보증금보증은 보증 가입 시 필요한 주택가격이 감정평가 금액으로 산출된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전세사기를 통해 드러난 보증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는 임대보증금보증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처럼 공시가격 또는 KB국민은행·한국부동산원의 시세를 우선 활용하고, 감정평가액은 공시가격이나 실거래가가 없는 경우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하도록 했다.

건설임대의 경우 최장 10년간 의무적으로 임대가 이뤄져 매매 실거래가격이 없고, KB나 한국부동산원 등 조사기관의 시세 조사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는 공시가격이 1순위 산정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존에 '공시가격의 150%'(공시가격 적용 비율 150%×전세가율 100%)까지 가능하던 보증가입 요건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처럼 '공시가격의 126%'(공시가격 적용 비율 140%×전세가율 90%) 이내로 강화했다.

문제는 건설임대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시세가 없다 보니 통상 인근 동일 면적의 분양주택보다 싸게 책정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시행령이 개정되면 현재 민간임대주택 특별법에 따라 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아 짓고 있는 건설임대와 공공지원 민간 임대 가운데 임대보증 보험 가입이 거절되는 단지가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건설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민간 임대사업을 하는 건설사의 경우 임대주택 보유 규모가 기업당 작게는 수천가구에서 많게는 수만가구에 이른다"며 "보증 가입 요건을 맞추려면 임차인에게는 막대한 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데 경영이 어려운 중소 건설사들은 비용 부담이 커 당장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보증 기준을 맞추기 위해 전국 민간 임대아파트에서 반환해야 하는 보증금 규모가 '조단위'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보증 요건 가운데 담보권 설정액과 임대보증금의 합이 주택가격의 100% 이내여야 하는 조항도 있는데, 건설임대는 가구당 최대 1억원의 주택기금을 지원받기 때문에 보증금 외에 선순위 채권이 발생한다"며 "주택가격이 공시가격 수준으로 낮아지면 보증 가입을 위한 부채비율을 맞추기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이번 법 개정으로 기존 건설임대나 공공지원 민간 임대는 물론, 앞으로 지어야 할 민간 임대아파트 건설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건설사들이 임대보증금보증 가입을 위해 보증금을 낮추는 만큼 자체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는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보증 기준을 강화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아 민영 임대아파트를 공급하는 대규모 건설형 임대사업까지 보증 문턱을 높이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한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보증 기준을 맞추기 위해 임대보증금을 갑자기 낮출 경우 자금조달 문제로 사업 자체가 어려워진다"며 "유동성이 취약한 중소 건설사는 단순한 보증금 반환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주택 건설사들은 국토부에 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는 건설임대에 대해서는 종전처럼 주택가 산정에 감정평가 금액을 인정해주는 등 가입 요건을 완화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업계에서 문제 제기가 있어 일단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며 "입법예고 기간에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보완이 필요한지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건설임대사업자뿐만 아니라 개인 매입임대사업자들도 보증요건 강화로 보증금 반환 등 임대인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등록임대사업자 자진 말소 허용 등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입법예고 기간은 다음 달 11일까지이며, 개정안은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사업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존 등록임대주택에 대해서는 2년의 유예기간을 둬 오는 2026년 6월 30일 이후 개정안이 적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