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12월 10만가구 갱신권 사용 추정…전월세 가격 인상 5%로 제한
"임대인은 보증금 차액반환 부담 덜고, 임차인은 미반환 우려 덜고"
2년전 계약된 서울 전월세 물량 중 최소 23%는 역전세난 비껴갈듯

임대차 3법 가운데 하나인 계약갱신청구권(갱신요구권)은 임차인이 원할 경우 2년 계약 만료 후 2년간 더 거주할 수 있도록 집주인에 요구할 수 있는 임차인의 권리다.

이 권리를 쓰면 전셋값 급등기에도 '짝꿍'인 전월세 상한제가 작동해 전세보증금이나 월세를 최대 5%까지만 증액할 수 있어 임대인에게는 불리하고, 임차인에는 유리한 제도로 인식됐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전셋값 하락으로 올해 하반기 최악에 달할 것이라는 '역전세난 공포'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잠잠한 분위기다.

물론 지금도 2년 전 높은 금액에 전세 계약을 맺었던 집주인들은 보증금 차액을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이 겪는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연초 걱정만큼 시장에 대혼란이 빚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평가다.

여기에는 최근 금리 안정에 따른 전셋값 상승과 함께 계약갱신청구권이라는 장치가 있었다.

2년 전 전셋값 급등을 가져온 계약갱신청구권이 2년 후 전셋값이 하락하자 역전세난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미숙의 집수다] 역전세난 '안전판' 된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
◇ 2년전 전셋값 뛰자 서울 전월세계약 23% 갱신권 사용…올하반기 시장 나와
임대차 3법은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로 2020년 7월 30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계약갱신청구권(이하 갱신권)과 전월세 상한제는 바로 다음 날인 그해 7월 31일, 전월세 신고제는 준비기간을 거쳐 2021년 6월 1일부터 시행됐다.

갑작스러운 제도 변화로 전세시장은 갱신권을 피해 4년 치 전셋값을 한꺼번에 올리려는 집주인들로 인해 대혼란을 빚었고, 전셋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0년 7월 4억6천458만1천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새 임대차법 시행 여파로 지난해 1월 역대 최고가인 6억3천424만3천원까지 치솟았다.

평균가 기준으로 1년 반 동안 36.5%가 뛴 것이다.

그러다 금리 인상, 전세자금대출 제한 등의 조치로 작년 2월부터 전셋값이 떨어지기 시작해 지난 4월(평균 5억1천77만원)까지 1년 2개월간 19.5%가 하락했다.

롤러코스터처럼 전셋값이 단기 급등락하면서 역전세난을 넘어 '깡통전세', '전세사기' 등 사회문제가 나타났다.

2년 전 전셋값이 급등할 당시 갱신권을 사용한 임차인은 다른 임차인들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전세 보증금을 올려줄 때 갱신권과 함께 작동하는 전월세 상한제 덕에 기존 계약에서 5%만 올려주는 혜택을 누렸다.

반대로 집주인은 남들이 전세금을 높게 받을 때 5%밖에 못올려 속이 쓰렸을 터다.

연합뉴스가 부동산R114의 도움을 받아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된 2021년 6월 이후 아파트 임대차 계약을 분석해 갱신권 사용 물량을 추산해봤다.

그 결과 전셋값이 급등했던 2021년 6월부터 12월까지 체결된 전국의 아파트 전월세 계약 66만4천104건 가운데 갱신 계약(재계약) 건수는 약 18만건이며, 이중 10만3천800건이 갱신권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조사 기간 전체 전월세 계약 물량의 15.6%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때 갱신권 사용 물량은 갱신 계약 가운데 실제 갱신권을 사용했다고 신고한 6만9천507건과, 신규·갱신 등 계약 유형 표기가 누락된 21만9천414건에다 동일 기간 갱신 계약 비중(27.12%) 및 갱신권 사용 비중(57.63%)을 곱해서 얻은 3만4천295건을 비표기 물건의 갱신권 사용 물량으로 추정해 합산한 결과다.

이들 전월세의 계약 기간이 2년이라고 가정할 때 2년 전 6∼12월 전월세 계약의 15.6%에 달하는 약 10만가구가 갱신권이 소진돼 올해 연말까지 시장에 나온다.

같은 방법으로 추산했을 때 서울은 2년 전 전월세 계약(14만5천건)의 23.4%인 약 3만4천건이, 수도권 전체로는 전체 전월세 계약(40만3천540건)의 20% 수준인 8만건에서 갱신권이 사용됐고, 올해 하반기 신규 계약으로 시장에 풀릴 전망이다.

2년 전 6∼12월은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국 기준 갱신 계약의 57.6%, 서울 기준 68%가 갱신권을 사용했다.

전세만 따지면 전국은 갱신 계약의 67%, 서울은 갱신 계약의 72%가 갱신권을 썼을 정도로 갱신권 사용 비중이 높았다.

보증금 비중이 큰 순수 전세 계약은 갱신 계약에서 갱신권을 사용한 비중이 전국 66.8%, 서울은 72.4%에 달했다.

2년 전 하반기 월세를 제외한 전세 계약의 갱신권 사용 추정 물량은 전국 기준 8만1천260건으로 전체 전세 계약(40만341건)의 20.3%를 차지했고, 서울은 2만6천488건으로 서울 전체 전세 계약(8만4천378건)의 31.4%를 차지했다.

[서미숙의 집수다] 역전세난 '안전판' 된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
◇ 2년전 갱신권 쓴 계약, 4년전 시세의 5%만 올려…역전세난 피한다
이때 주목할 것은 갱신권을 사용한 물량은 전월세 상한제 때문에 기존 계약의 최대 5%만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2021년 하반기 갱신권을 사용한 전국의 10만건은 2019년 하반기 시세에서 최대 5%만 올려줬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기준으로 2019년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억3천908만2천원이다.

2021년 7월에 갱신권을 사용해 기존 계약에서 5%를 올려줬다면 2019년보다 2천195만4천원 인상한 평균 4억6천103만6천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한 것이 된다.

이는 올해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인 5억1천293만6천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전국 평균으로도 2019년 7월 평균 전셋값(2억2천336만6천원)에서 5%를 인상한 금액은 2억3천453만4천원으로, 올해 7월 평균 전셋값인 2억5천699만2천원보다 낮다.

2년 전 갱신권을 쓴 계약은 올해 새로 전세 계약을 할 때 집주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돼 역전세 위험에서 벗어난 셈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면적 84㎡는 2021년 8월 전세 신규 계약이 13억∼14억원에 달했는데, 갱신권을 사용해 인상률이 5% 이내로 제한된 전세는 당시 이보다 4억∼5억원 이상 싼 7억∼9억원 선에 계약이 이뤄졌다.

2년 뒤인 올해 8월 체결된 이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는 11억∼12억원 선.
2년 전 갱신권을 쓴 경우 임차인은 현재 동일 아파트 전세를 얻을 때 보증금을 3억원 이상 올려줘야 하고, 임대인은 남들이 역전세난으로 전세금 차액을 임차인에게 돌려줄 때 반대로 3억원 이상 올려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신고된 사례를 보면 2년 전 잠실 리센츠 전용 84㎡ 전세를 13억5천만원에 계약했던 집주인 A씨는 올해 전셋값 하락으로 11억원에 갱신 계약을 맺으면서 보증금 차액 2억5천만원을 임차인에게 내줬다.

반면 2년 전 8월 임차인이 갱신권을 사용해 8억6천만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던 경우는 2년 뒤인 올해 8월 10억원에 재계약을 하면서 종전보다 보증금을 1억4천만원 올려받았다.

2년 전 전셋값 급등을 초래했던 계약갱신청구권이 2년 뒤 전셋값이 하락하자 역전세난으로 인한 혼란을 덜어준 안전장치가 된 것이다.

부동산R114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집주인은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에 2년 전 전셋값을 올려받지 못하며 손해를 봤지만, 2년 뒤 전셋값 하락으로 보증금 차액을 반환해야 하는 부담도 덜게 됐다"며 "임차인은 2년간 보증금 인상 부담 없이 싸게 거주하고, 역전세난에 따른 보증금 미반환 문제도 없는 다행인 경우"라고 말했다.

추가로 역전세난을 비껴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량은 또 있다.

세제 혜택 대신 임대료를 5%만 올릴 수 있는 임대사업자의 등록 임대주택 물량도 대부분 역전세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갱신권을 쓰지 않고도 집주인과 임차인의 협의에 따라 전세 가격을 시세보다 낮게 계약한 것들도 일부는 역전세난에서 벗어났을 수 있다.

2년 전 갱신권을 소진한 임차인들이 올해 새로 전세를 얻으면서 신규 전세 계약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66.7%였던 전국 아파트 전월세 신규 계약 비중은 올해 들어 8월까지 74%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서울은 58.8%에서 70.1%로 늘었다.

하반기 우려했던 역전세난이 생각보다 잠잠한 것은 올해 전세 신규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셋값이 오르고, 집주인이 반환해야 할 전세금 차액이 줄어든 때문이다.

여기에는 2년 전 갱신 계약의 상당수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최근 들어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은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전월세 갱신 계약 가운데 갱신권을 사용한 비중은 전국 51%, 서울 59%로 2021년보다 감소했고, 올해 들어서는 8월까지 전국이 34%, 서울은 33%만 갱신권을 사용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전셋값 하락으로 역전세난이 발생하며 굳이 갱신권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지금은 갱신권을 쓰지 않아도 재계약이 어렵지 않다"며 "앞으로 전셋값이 뛰고 불안해지면 갱신권 사용이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