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자퇴후 6년간 PC방서 살다…지자체 홍보맨 '열풍 주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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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41만 '충주 유튜브' 김선태 씨
패러디 영상으로 단숨에 인기 스타로
개인 채널 했다간 망할 것 같아 안해
지자체 유튜브 흥행하려면 제2의 길 찾아야
그러던 어느 날 들려온 사망선고와도 같은 소식.
‘사법고시 폐지’.
서울 신림동 고시생활을 마무리하고 고향 충북 충주로 돌아가야 했다. 새롭게 찾은 진로는 공무원. 면사무소에서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담당했다. 민원에도 시달리고, 열심히 해도 티 나지 않는 일이었다.
지난한 시간을 견뎌낸 끝에 김 씨는 충주시 출신으로는 배우 박성웅과 이경영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됐다. 그는 현재 충북 충주시 홍보담당관으로 구독자 41만 명의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충TV'를 운영하고 있다. 충주시의 정주 인구 20만 7000명(8월 기준)보다 2배 많은 숫자다. 채널 개설 4년 만에 이룬 성과다.
동료 직원 인터뷰부터 행사 현장 브이로그(vlog)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상을 섭렵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패러디'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 ‘관짝춤’을 패러디한 ‘생활 속 거리두기’ 홍보 영상 조회수는 884만 회(13일 기준)다. 최근에는 인기 걸그룹 뉴진스, 솔로가수 권은비를 비롯해 에버랜드 판다 푸바오를 따라 한 영상을 올려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했다. B급 감성이 넘치는 영상물에 정책 홍보성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능력이 탁월한 김 주임이다.
억지로 떠밀리듯 시작한 유튜브였지만 김 씨는 어느덧 전국 지자체가 따라 하려는 대상이 됐다. 김 씨는 "지자체들이 유튜브로 흥행하려면 제2의 홍보맨이 아닌 아예 다른 분야를 새로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라고 합니다. 선출직 공무원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무원이라고 항상 자신을 소개합니다.
2019년 4월에 충주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현재(13일 기준) 구독자 41만 6000명을 넘었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조길형 충주시장님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시장님이 유튜브를 시작해보라고 권해 주셨어요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 일단 올리기라도 해봐라.“
무엇이든 우리 시 콘텐츠가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셨고 마인드가 좋으셨던 거죠.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셨어요."
공무원 조직에서 월등히 잘한다고 월급이 오른다거나 승진을 초고속으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욕심을 내면서 매주 창작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원대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홍보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됐을 때 다른 지자체들 채널을 모니터링했어요. 다 망해 있더라고요. 어느 채널의 한 영상은 조회 수가 ‘2’회였어요. 심지어 돈도 많이 썼어요. 창피했어요.
공무원 조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실적이 아니에요. 근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홍보를 실패한 원인이 잘할 필요가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잘한다고 월급이 오르는 건 아니니깐요.
억지로 떠밀려서 시작은 하는데 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렇게 하지는 말자는 생각뿐이었죠. 지자체들이 반대로만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홍보 관련 경험이 좀 있으셨었나요?
"전 사진도 안 찍었습니다."
그런데 자신감이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합니다.
"기획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판다도 연기하고, GD와 권은비 같은 분들에게 샤라웃도 하고 다 하지만, 사실 저는 ISTJ(MBTI 유형, 논리주의자이고 현실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타입)에요. 그런 거 정말 싫어해요. 어쨌든 지금은 이제 적응이 돼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남들하고 다른 발상을 하면 잘 되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기획하면 잘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은 있었습니다. 솔직히 첫 영상부터 잘 될 줄 알았는데 반응을 얻기까지 한 두 달 정도 걸렸습니다."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주로 하시는 일이 있다면요?
"사실 커뮤니티나 이런 곳을 모두 뒤집니다. 다음 카페, 유머 게시판 가리지 않고 다 봅니다. 근데 이제 더 젊은 채널들을 제가 접근을 못 하겠어요. 예를 들면 틱톡 감성 이런 거 있잖아요. 그 감성을 제가 이해를 못하겠어서 위기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으셨을 텐데 충주시에 계속 남아 계신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생각보다 충주시를 사랑해요. 아니, 고향 사랑이라기보다 열등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청주나 다른 지자체들에 밀리는 데 대한 열등감이죠. 저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는데요, 항상 열등감이 있었어요. 서울서 학교 다닐 때 친구들 사이에서 충주에 산다고 하면 대개는 청주인 줄 알거든요. 신림동에서 사법시험 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충주’를 검색할 정도로 나름대로 애향심도 있었고요.
충주시를 잘 알리고 싶은 그런 반발 심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높은 연봉 등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당연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저는 충주시 유튜브와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케팅적으로는 제가 충주시가 된 거예요.
여기서 벗어나서 만약에 국토부에 간다. '오늘부터 국토부 홍보맨입니다'라고 하면 진정성이 떨어지겠죠."
기관이나 기업에서 주무관님을 모셔가려면 어떤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할까요?
"일단 이 충주시 유튜브를 하고 있으면 안 되고요.
무엇보다도 기획, 촬영, 편집 등 영상 제작 전반에 대해 전권이 제게 있어야 해요. 명분상 전권을 준다고 할 수 있지만, 진정성 있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데가 없을 것 같아요."
개인 유튜브를 시작해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지금 유튜브를 만들면 구독자 10만 명은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개설하는 순간 우리 시청에서 효수가 될 겁니다. 저기 (시청) 앞에 장대에 붙여 모두가 저를 매달아 놓으려고 할 거예요.
충주시 구독자 수가 10만 명 후반일 때 김민아 씨(기상캐스터 출신 방송인)가 '충주시를 나가면 훨씬 잘 될 것 같은데 왜 거기 있냐, 월급을 하루 만에 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을 때는 '그럴 확률도 있지만 망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해서 남아있다고 답했어요.
그런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잘 될 것 같긴 한데 수명이 짧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또 보수적이니까 공무원이지 않겠습니까?"
초반에 동료 공무원 인터뷰, 브이로그 등에 비해 최근 몇 달 간 올라온 영상은 대체로 1분을 넘기지 않아요. 팬들이 더 긴 호흡의 영상도 공개해달라고 요청하는데 공개할 생각은 있으신가요?
"네, 요즘 영상은 거의 30초 내외죠. 십몇 초도 길죠. 그래서 그 죄책감 때문에 오늘 송출하는 영상은 주말에 야근하면서 2분 정도로 늘렸어요.
저희 구독자들 취향이 다양합니다. 옛날에 공무원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막 스케치 코미디 같은 걸 좋아했던 사람이 있고, 인터뷰를 좋아했던 사람도 있고, 패러디 같은 걸 좋아했던 사람들도 있고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쉽죠."
주무관님이 영감을 주로 얻으시는 원천이 있나요?
"시류를 파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잖아요. 커뮤니티 활동하면서 콘텐츠에 접목할 만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기도 하고 뉴스, 책 등등 온갖 정보를 습득하려고 해요.
그런 다음 고민을 엄청 많이 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도 아이디어를 계속 생각하다 왔어요. 보통 계속 고민하는 와중에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서 씻을 때 아니면 출근할 때 생각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리고 요새 핫한 주제를 제 걸로 소화해내는 거죠. 패러디해도 어떻게 우리 식으로 표현을 할 것인지 영리하게 연출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 다른 인터뷰에서 유튜브 활동을 최대 2년 정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한창 활약하고 계신데 곧 그만 둘 수도 있다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잘 되고 있기도 하긴 한데 일반 유튜버들 생명이 길지가 않거든요.
보통 4년 정도 가기가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리 잘 나가도 이게 오래 가기가 쉽지 않은데 저희는 4년이 넘었잖아요. 그러니까 과연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약간 이런 생각이 근본적으로 있어요.
그리고 나이가 계속 드니까, 젊은 세대의 감성을 못 따라가겠어요. 무엇보다도 정보량에 한계가 있어요."
인생 다음 스텝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셨나요?
"고민하긴 하는데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어요. 근데 저는 지금이 썩 나쁘지 않고요. 계속 충주시에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이대로 충주시장에 도전해보시는 건?
"…."
지자체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너도나도 유튜브 판에 뛰어들었어요. 잘 된 케이스도 있고, 무리수를 둔 경우도 꽤 있었어요. 지자체의 유튜브가 성공할 수 있는 필승 전략이 있을까요?
"이게 시기별로 다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어그로를 끌 수밖에 없어요. 관심이 아무도 없고 관심이 없는 반면에 관심이 없다 보니까 리스크가 없어요. 아무리 뭘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근데 구독자가 2배 늘면 리스크는 4배 늘어요. 저도 웬만한 건 못합니다. 이제 대형 유튜브가 된 거죠. 보통 초심 잃었다고 하잖아요. 이럴 수밖에 없어요. 초심을 지키면 유지가 안 돼요.
초반에는 마니아층을 공략하다가 규모가 커지면 대중적으로 바뀌게 되는 거죠. 모두 그런 길을 걷습니다."
서울시 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서울시가 최근 공무원 중 최강 유튜버를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충주시 유튜브 흉내NO“라는 문구를 포스터에 적었어요. 어떻게 보시나요?
"거기서 벌써 진 거죠. (하하)
어떻게 보면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시는 김연아, BTS를 유튜브에 등장시킬 수 있을 만큼 예산 규모는 저희와 비교가 안 돼요.
서울시에서 도전한다는 걸 보고 유튜브 활동이 어떻게 보면 주류가 된 건가 약간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는 기회가 됐습니다.
틀을 깨는 건 좋은데 지금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강서구는 버튜버(가상 인물 유튜버)를 하잖아요. 저의 영향은 받았을 수 있지만 제2의 홍보맨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서울시도 아예 다른 분야를 개척하는 식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화면 안과 밖의 주무관님의 모습은 아주 다른가요?
"온도 차이가 조금은 있습니다. 저 정도만 돼도 길거리에서 생각보다 많이들 알아보시거든요.
영상에서의 저의 모습과 평범한 저의 온도 차이랄까요. 밖에서는 텐션이 높은데, 사무실에 들어오면….
최근에 가족들이랑 문경에 놀러 갔거든요. “와이프한테 잔소리를 많이 하고 계시던데”라는 댓글이 달렸어요. 그렇게 많이 했나 라는 생각도 들면서 유명세라는 게 쉽지 않은 거라고 느꼈죠."
주무관님은 ‘쌈마이웨이(남들이 뭐라든 내 갈 길을 가는)’ 스타일로 사실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고충이 많으시겠습니다.
"네, 눈치를 엄청나게 봅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저를 보는 시선도 그리 따뜻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최대한 나서지 않으려고 해요. 다 제가 감당하기로 작정하고 시작한 일입니다. 괜찮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개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사회입니다. 어느 조직에서든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개인 차원에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확신이 필요해요. 미움 살 것을 감수할 만큼 내가 반드시 성과를 내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도전을 할 수 있으니까요.
조직 차원에서는 관대함이 필요해요. 저는 잘 된 케이스잖아요. 저처럼 했다가 사라져간 케이스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과거에는 직속상관만 설득하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대나무숲이든 블라인드든 온갖 커뮤니티와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전 직원이 수용해 줘야 합니다. 그래서 더 어떻게 보면 조직 전체가 서로를 응원해주고 받아들일 줄 아는 문화가 더 확산했으면 좋겠습니다."
충주=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패러디 영상으로 단숨에 인기 스타로
개인 채널 했다간 망할 것 같아 안해
지자체 유튜브 흥행하려면 제2의 길 찾아야
김선태 씨(36)는 대학을 자퇴하고 무작정 사법고시에 도전했다. 독서실 가듯이 PC방에도 자주 다녔다. 6년 동안 PC방에 쓴 돈은 1500만 원. 젊음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들려온 사망선고와도 같은 소식.
‘사법고시 폐지’.
서울 신림동 고시생활을 마무리하고 고향 충북 충주로 돌아가야 했다. 새롭게 찾은 진로는 공무원. 면사무소에서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담당했다. 민원에도 시달리고, 열심히 해도 티 나지 않는 일이었다.
지난한 시간을 견뎌낸 끝에 김 씨는 충주시 출신으로는 배우 박성웅과 이경영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됐다. 그는 현재 충북 충주시 홍보담당관으로 구독자 41만 명의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충TV'를 운영하고 있다. 충주시의 정주 인구 20만 7000명(8월 기준)보다 2배 많은 숫자다. 채널 개설 4년 만에 이룬 성과다.
동료 직원 인터뷰부터 행사 현장 브이로그(vlog)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상을 섭렵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패러디'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 ‘관짝춤’을 패러디한 ‘생활 속 거리두기’ 홍보 영상 조회수는 884만 회(13일 기준)다. 최근에는 인기 걸그룹 뉴진스, 솔로가수 권은비를 비롯해 에버랜드 판다 푸바오를 따라 한 영상을 올려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했다. B급 감성이 넘치는 영상물에 정책 홍보성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능력이 탁월한 김 주임이다.
억지로 떠밀리듯 시작한 유튜브였지만 김 씨는 어느덧 전국 지자체가 따라 하려는 대상이 됐다. 김 씨는 "지자체들이 유튜브로 흥행하려면 제2의 홍보맨이 아닌 아예 다른 분야를 새로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라고 합니다. 선출직 공무원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무원이라고 항상 자신을 소개합니다.
2019년 4월에 충주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현재(13일 기준) 구독자 41만 6000명을 넘었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조길형 충주시장님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시장님이 유튜브를 시작해보라고 권해 주셨어요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 일단 올리기라도 해봐라.“
무엇이든 우리 시 콘텐츠가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셨고 마인드가 좋으셨던 거죠.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셨어요."
공무원 조직에서 월등히 잘한다고 월급이 오른다거나 승진을 초고속으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욕심을 내면서 매주 창작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원대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홍보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됐을 때 다른 지자체들 채널을 모니터링했어요. 다 망해 있더라고요. 어느 채널의 한 영상은 조회 수가 ‘2’회였어요. 심지어 돈도 많이 썼어요. 창피했어요.
공무원 조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실적이 아니에요. 근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홍보를 실패한 원인이 잘할 필요가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잘한다고 월급이 오르는 건 아니니깐요.
억지로 떠밀려서 시작은 하는데 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렇게 하지는 말자는 생각뿐이었죠. 지자체들이 반대로만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홍보 관련 경험이 좀 있으셨었나요?
"전 사진도 안 찍었습니다."
그런데 자신감이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합니다.
"기획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판다도 연기하고, GD와 권은비 같은 분들에게 샤라웃도 하고 다 하지만, 사실 저는 ISTJ(MBTI 유형, 논리주의자이고 현실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타입)에요. 그런 거 정말 싫어해요. 어쨌든 지금은 이제 적응이 돼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남들하고 다른 발상을 하면 잘 되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기획하면 잘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은 있었습니다. 솔직히 첫 영상부터 잘 될 줄 알았는데 반응을 얻기까지 한 두 달 정도 걸렸습니다."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주로 하시는 일이 있다면요?
"사실 커뮤니티나 이런 곳을 모두 뒤집니다. 다음 카페, 유머 게시판 가리지 않고 다 봅니다. 근데 이제 더 젊은 채널들을 제가 접근을 못 하겠어요. 예를 들면 틱톡 감성 이런 거 있잖아요. 그 감성을 제가 이해를 못하겠어서 위기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으셨을 텐데 충주시에 계속 남아 계신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생각보다 충주시를 사랑해요. 아니, 고향 사랑이라기보다 열등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청주나 다른 지자체들에 밀리는 데 대한 열등감이죠. 저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는데요, 항상 열등감이 있었어요. 서울서 학교 다닐 때 친구들 사이에서 충주에 산다고 하면 대개는 청주인 줄 알거든요. 신림동에서 사법시험 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충주’를 검색할 정도로 나름대로 애향심도 있었고요.
충주시를 잘 알리고 싶은 그런 반발 심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높은 연봉 등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당연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저는 충주시 유튜브와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케팅적으로는 제가 충주시가 된 거예요.
여기서 벗어나서 만약에 국토부에 간다. '오늘부터 국토부 홍보맨입니다'라고 하면 진정성이 떨어지겠죠."
기관이나 기업에서 주무관님을 모셔가려면 어떤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할까요?
"일단 이 충주시 유튜브를 하고 있으면 안 되고요.
무엇보다도 기획, 촬영, 편집 등 영상 제작 전반에 대해 전권이 제게 있어야 해요. 명분상 전권을 준다고 할 수 있지만, 진정성 있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데가 없을 것 같아요."
개인 유튜브를 시작해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지금 유튜브를 만들면 구독자 10만 명은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개설하는 순간 우리 시청에서 효수가 될 겁니다. 저기 (시청) 앞에 장대에 붙여 모두가 저를 매달아 놓으려고 할 거예요.
충주시 구독자 수가 10만 명 후반일 때 김민아 씨(기상캐스터 출신 방송인)가 '충주시를 나가면 훨씬 잘 될 것 같은데 왜 거기 있냐, 월급을 하루 만에 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을 때는 '그럴 확률도 있지만 망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해서 남아있다고 답했어요.
그런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잘 될 것 같긴 한데 수명이 짧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또 보수적이니까 공무원이지 않겠습니까?"
초반에 동료 공무원 인터뷰, 브이로그 등에 비해 최근 몇 달 간 올라온 영상은 대체로 1분을 넘기지 않아요. 팬들이 더 긴 호흡의 영상도 공개해달라고 요청하는데 공개할 생각은 있으신가요?
"네, 요즘 영상은 거의 30초 내외죠. 십몇 초도 길죠. 그래서 그 죄책감 때문에 오늘 송출하는 영상은 주말에 야근하면서 2분 정도로 늘렸어요.
저희 구독자들 취향이 다양합니다. 옛날에 공무원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막 스케치 코미디 같은 걸 좋아했던 사람이 있고, 인터뷰를 좋아했던 사람도 있고, 패러디 같은 걸 좋아했던 사람들도 있고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쉽죠."
주무관님이 영감을 주로 얻으시는 원천이 있나요?
"시류를 파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잖아요. 커뮤니티 활동하면서 콘텐츠에 접목할 만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기도 하고 뉴스, 책 등등 온갖 정보를 습득하려고 해요.
그런 다음 고민을 엄청 많이 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도 아이디어를 계속 생각하다 왔어요. 보통 계속 고민하는 와중에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서 씻을 때 아니면 출근할 때 생각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리고 요새 핫한 주제를 제 걸로 소화해내는 거죠. 패러디해도 어떻게 우리 식으로 표현을 할 것인지 영리하게 연출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 다른 인터뷰에서 유튜브 활동을 최대 2년 정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한창 활약하고 계신데 곧 그만 둘 수도 있다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잘 되고 있기도 하긴 한데 일반 유튜버들 생명이 길지가 않거든요.
보통 4년 정도 가기가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리 잘 나가도 이게 오래 가기가 쉽지 않은데 저희는 4년이 넘었잖아요. 그러니까 과연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약간 이런 생각이 근본적으로 있어요.
그리고 나이가 계속 드니까, 젊은 세대의 감성을 못 따라가겠어요. 무엇보다도 정보량에 한계가 있어요."
인생 다음 스텝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셨나요?
"고민하긴 하는데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어요. 근데 저는 지금이 썩 나쁘지 않고요. 계속 충주시에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이대로 충주시장에 도전해보시는 건?
"…."
지자체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너도나도 유튜브 판에 뛰어들었어요. 잘 된 케이스도 있고, 무리수를 둔 경우도 꽤 있었어요. 지자체의 유튜브가 성공할 수 있는 필승 전략이 있을까요?
"이게 시기별로 다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어그로를 끌 수밖에 없어요. 관심이 아무도 없고 관심이 없는 반면에 관심이 없다 보니까 리스크가 없어요. 아무리 뭘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근데 구독자가 2배 늘면 리스크는 4배 늘어요. 저도 웬만한 건 못합니다. 이제 대형 유튜브가 된 거죠. 보통 초심 잃었다고 하잖아요. 이럴 수밖에 없어요. 초심을 지키면 유지가 안 돼요.
초반에는 마니아층을 공략하다가 규모가 커지면 대중적으로 바뀌게 되는 거죠. 모두 그런 길을 걷습니다."
서울시 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서울시가 최근 공무원 중 최강 유튜버를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충주시 유튜브 흉내NO“라는 문구를 포스터에 적었어요. 어떻게 보시나요?
"거기서 벌써 진 거죠. (하하)
어떻게 보면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시는 김연아, BTS를 유튜브에 등장시킬 수 있을 만큼 예산 규모는 저희와 비교가 안 돼요.
서울시에서 도전한다는 걸 보고 유튜브 활동이 어떻게 보면 주류가 된 건가 약간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는 기회가 됐습니다.
틀을 깨는 건 좋은데 지금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강서구는 버튜버(가상 인물 유튜버)를 하잖아요. 저의 영향은 받았을 수 있지만 제2의 홍보맨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서울시도 아예 다른 분야를 개척하는 식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화면 안과 밖의 주무관님의 모습은 아주 다른가요?
"온도 차이가 조금은 있습니다. 저 정도만 돼도 길거리에서 생각보다 많이들 알아보시거든요.
영상에서의 저의 모습과 평범한 저의 온도 차이랄까요. 밖에서는 텐션이 높은데, 사무실에 들어오면….
최근에 가족들이랑 문경에 놀러 갔거든요. “와이프한테 잔소리를 많이 하고 계시던데”라는 댓글이 달렸어요. 그렇게 많이 했나 라는 생각도 들면서 유명세라는 게 쉽지 않은 거라고 느꼈죠."
주무관님은 ‘쌈마이웨이(남들이 뭐라든 내 갈 길을 가는)’ 스타일로 사실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고충이 많으시겠습니다.
"네, 눈치를 엄청나게 봅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저를 보는 시선도 그리 따뜻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최대한 나서지 않으려고 해요. 다 제가 감당하기로 작정하고 시작한 일입니다. 괜찮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개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사회입니다. 어느 조직에서든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개인 차원에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확신이 필요해요. 미움 살 것을 감수할 만큼 내가 반드시 성과를 내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도전을 할 수 있으니까요.
조직 차원에서는 관대함이 필요해요. 저는 잘 된 케이스잖아요. 저처럼 했다가 사라져간 케이스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과거에는 직속상관만 설득하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대나무숲이든 블라인드든 온갖 커뮤니티와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전 직원이 수용해 줘야 합니다. 그래서 더 어떻게 보면 조직 전체가 서로를 응원해주고 받아들일 줄 아는 문화가 더 확산했으면 좋겠습니다."
충주=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