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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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파탈'(치명적인 여성)의 대명사인 카르멘이 사실은 지독한 스토킹의 피해자일 수 있지 않을까.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극단의 신작 '카르멘'은 집시 여인 카르멘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 파멸에 이르는 돈 호세의 사랑을 그린 비극적 이야기다. 1845년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쓴 원작소설과 이를 바탕으로 30년 뒤 발표된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이 직접 각색한 이번 연극은 오페라와 비교해 가해자로서의 돈 호세와 피해자로서 카르멘의 모습을 더 강조했다. 이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돈 호세는 카르멘이 자신에게 질리고 다른 사랑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절망해 그녀를 찔러 죽인다.

오페라에선 돈 호세를 '나쁜 여자'에게 당한 피해자로, 즉 일종의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연극에선 그의 집착과 광기를 더욱 강조했고, 동시에 자유를 갈망했지만 이루지 못하고 죽은 카르멘을 동정한다. 마지막에 카르멘을 죽이고 "내가 카르멘을 가졌다"고 외치는 돈 호세의 대사에 이 모든 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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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단장은 "카르멘은 자유를 추구했을 뿐인데 원작에선 '나쁜 여자'로만 그려지는 게 아쉬웠고, 반대로 카르멘에 대한 사랑이 집착과 광기로 변한 돈 호세에겐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점에 관객들이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각색했다"고 말했다.

카르멘과 돈 호세 외에 다른 캐릭터가 더욱 풍성해진 것도 눈에 띈다. 원작에는 등장하지만 오페라 대본에는 없는 카르멘의 전남편 가르시아와 카르멘의 새로운 사랑 투우사 루카스의 비중이 커졌다. 카르멘을 둘러싼 여러 유형의 남성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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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대사가 특징이다. 일상적인 말투보다는 문학적인 대사를 배우들이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표현한다. 연극적 과장이 버무려진 대사는 낯설고 어색하지만, 뭔가 예술적이란 느낌을 준다.

오페라 '카르멘'을 본 관객은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겠다. 공연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0월 1일까지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