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고트’(Greatest Of All Time·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함), 리오넬 메시가 미국에 축구 열기를 점화시키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올해 이적한 소속팀 인터 마이애미가 출전한 컵대회에서 메시는 일곱 경기 연속골을 몰아치면서 작년 순위 최하위였던 팀을 일약 우승팀으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이 대회 득점왕과 최우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미국으로의 화려한 입성이자 다시 한번 메시의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과의 2년 계약이 끝나가기 전부터 이적 시장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유럽 바깥의 축구계도 함께 움직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하면서 큰 손이 된 사우디는 메시에게 연봉 6천억이라는 천문학적 숫자를 제시했다.

하지만 메시는 미국을 선택했다. 구단에서 제시한 연봉은 7백억이었지만 다른 매력적인 조건이 붙어있었다. 스포츠 스타인 메시를 통해 미디어 사업을 강화하려는 세계적 기업인 애플과 계약을 체결하여 애플티비 구독자 수의 증가에 따라 러닝개런티를 받게 되었으며, 아디다스와도 협정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 축구 영웅' 메시가 마이애미를 택한 최적의 조건들
사진=인터 마이애미 인스타그램

메시가 미국으로 간 이유에는 향후 세계 축구 시장에서 미국의 중요성도 고려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3년 후인 2026년에 열리는 월드컵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 국가가 공동으로 개최한다. 그런데 총 경기의 60% 미국에서 열리기 때문에 국제축구연맹과 미국은 자국 내의 축구 열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생활 체육과 학원 스포츠로 보급되고 있지만, 미국에서 축구는 여전히 마이너 종목에 속하며 야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 소위 4대 프로스포츠에 비하면 그 인기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축구 스타였던 독일의 클린스만이나 영국의 데이비드 베컴이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하는 시점에 전 세게 축구 열기의 확산을 위한 마지막 종착지로서 미국에 진출하였었다. 메시도 이들의 길을 따르고 있다. 차이라면 미국에 입성한 지 얼마 안 되지만, 메시 효과는 바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메시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축구는 히스패닉(Hispanic), 혹은 라티노(Latino)라 불리는 이들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프로 스포츠로서 축구를 즐기고 시청하는 상당수가 라틴 아메리카 출신들로 미국에 정착해 살아가는 히스패닉들이다. (참고로 ‘히스패닉’과 ‘라티노’는 현재 통상적으로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은 이미 흑인을 제치고 미국 내의 최대 소수인종의 위치에 오른 지 20여 년이 지났으며, 현재에는 미국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인구 증가와 함께 이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도 점차 확대되는 상황이다. 히스패닉들에게 메시는 매우 친근하고 이웃이자, 자신들의 영웅이다. 아르헨티나 사람이지만 라틴아메리카라는 같은 대륙 출신이라는 점에서 메시의 미국행을 반기며, 메시의 플레이에 환호를 보내고 있다.
'아르헨 축구 영웅' 메시가 마이애미를 택한 최적의 조건들
사진=인터 마이애미 인스타그램

이처럼 미국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세계의 마지막 축구 시장이라는 점과 히스패닉 전체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라는 점에서 메시의 미국행을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왜 하필 마이애미에 둥지를 틀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은 LA 갤럭시나 콜로라도, 텍사스 등 남서부 도시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메시가 마이애미를 낙점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마이애미가 미국에서 가장 ‘히스패닉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구수로 판단할 때는 캘리포니아의 LA를 무시할 수 없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마이애미라는 도시에서 히스패닉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표적 히스패닉 도시라고 칭한다.

역사적으로 마이애미는 쿠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성장한 도시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쿠바는 미국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쿠바에서 가까운 도시인 마이애미와의 교류가 확대되었고, 쿠바인들이 이 도시에 들어오면서 담배 공장이 번성했다. 그러나 쿠바인들의 대규모 이주가 시작된 시점은 1959년 쿠바혁명 이후이다.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주도한 혁명이 성공하면서, 이에 반대하거나 기존의 기득권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많은 쿠바인이 조국을 등지고 마이애미에 새로 정착했다.
'아르헨 축구 영웅' 메시가 마이애미를 택한 최적의 조건들
미국 정부는 카스트로 공산정권을 떠난 쿠바인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였으며, 이들이 미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직장, 주거, 교육비 등 커다란 혜택을 제공하였다. 한편으로, 이 쿠바인들은 교육 수준도 높았으며 경제적 수완도 좋아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바탕으로 대부업, 상업, 건설업, 담배산업을 빠른 속도로 일으켰고, 이 도시의 핵심적 성장동력이 되었다.

또한, 카리브 지역의 여러 섬을 여행하는 크루즈 산업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장본인들이다. 이렇게 1950년 인구 50만 정도이던 이 도시와 인근은 현재는 550만 명이 넘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가 되었으며, 쿠바인들은 자신들이 마이애미를 건설한 주인공이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이들은 경제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정계에도 광범위하게 진출하였다. 시의원을 비롯한 지방 의회, 시장 등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알려진 인물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쿠바계 이민 2세인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는 2011년 이후 마이애미가 속한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이며, 지난 2020년 대선에서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입후보해 트럼프와 경쟁하기도 했으며, 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던 거물급 정치인이다.

그렇지만 마이애미가 쿠바계 미국인들만의 도시는 아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멕시코계 미국인, 푸에르토리코인 등 다른 히스패닉들의 유입도 크게 늘었다. 그러면서 명실공히 히스패닉 전체의 도시가 되었다. 미국의 24시간 스페인어 TV 방송국 중 하나인 텔레문도(Telemundo)의 본부가 이 도시에 위치하며, 히스패닉 인구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사업과 비즈니스가 이 도시를 중심으로 미국 전역과 연결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으로 진출하려는 우리나라 다수의 대기업도 마이애미를 전초기지로 삼고 있다.

이런 연유로 마이애미는 미국과 라틴아메리카를 연결하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각 국가와 관련된 산업에서 미국의 통로 역할을 하면서, 라틴아메리카로부터 점점 더 많은 인력과 인프라가 이 도시로 들어오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졌다. 마이애미는 이미 라틴아메리카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이 샤키라, 제니퍼 로페스, 핏불, 리키 마틴 등 대형 라틴계 스타와 아티스트들이 마이애미에 정착해 살고 있다.

또한, 마이애미에서는 영어 없이 스페인어만 말하면서 생활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다. 히스패닉 인구가 상당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비즈니스와 산업 등에서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서 법률사무소나 병원을 개업하기 위해서는 스페인어로 소통하는 능력이 필수라는 이야기도 있다. 마이애미에서 사는 백인들은 인종적으로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어떠한 느낌인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럴 만큼 스페인어는 이미 이 도시의 언어로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스페인 리그에서도 오랫동안 활약해 온 메시와 그의 가족에게 마이애미는 미국인 동시에, 이런 측면에서 라틴아메리카라고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영어로 하는 인터뷰를 늘려가야 하고, 미국 문화를 습득해야 하지만 마이애미라는 도시는 그가 축구를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천천히 융화되도록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선택한 인터 마이애미는 메시에게 최적의 장소였던 셈이다.

마이애미가 꼴찌에서 우승팀이 된 이번 컵대회의 결승전은 마이애미 홈구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만 명을 수용하는 구장에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열광적인 인기로 인해 장소를 옮겨야 했고, 결국 6만 5천 명을 수용하는 마이애미 돌핀스의 미식축구장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마이너 스포츠인 축구가 미국인들의 대표적 스포츠인 미식축구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이다. 메시 효과가 계속될 것인지는 함께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메시라는 축구 ‘고트’의 등장으로 인해 축구가 미국 스포츠의 지형도가 바뀌는 흥미로운 상상을 하는 것은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미국 히스패닉의 성장과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