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로 빚어낸 대나무… 선비들의 묵죽을 떠올리다
담양 소쇄원 대나무

서울에서는 좀체 멋진 대나무 군락을 보기 어렵다. 박물관을 찾거나 화집에서 옛 화공들이 그린 대나무를 감상해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식물을 사생(寫生)한 것이 아니라 옛사람들이 대나무에 빗대어 표방하고자 했던 상징이자 갈망의 투영이라 실감이 안 난다.

제대로 울창한 대숲을 보려면 담양 죽녹원이나 소쇄원에 가면 좋을 것이다. 날이 무더울수록 청명함과 서늘함이 실감 난다. 사실 대숲을 찾지 않아도 남도 여기저기 대나무가 지천이다. 낮은 가옥 뒤를 병풍처럼 두르거나 돌담과 나란히 도열한 군락을 보고 있으면, 사시사철 푸르고 싱그러운 대나무의 기운이 내 몸으로 들어와 활력을 채우는 것 같다.

댓잎끼리 부딪며 내는 소리, 바람이 대나무 사이를 관통하며 내달리는 획획 소리만 들어도 대나무 마디의 자연적인 형과 운동이 머릿속에 영화처럼 그려진다. 어디선가 울창하고 푸른 대나무 숲 사이를 날아 흔들리는 대나무 위에서 춤추듯 액션하는 와호장룡(臥虎藏龍, 2000) 속 칼싸움 장면이 곧 펼쳐질 것만 같다.

고려시대부터 대나무는 시문(詩文)뿐 아니라 문인묵화(文人墨畫)의 소재였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대나무는 도교와 유가의 표상을 대변할 뿐 아니라 변심 없이 청렴하게 사는 정치적 은자의 초상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종했던 성리학적 세계관과 군자로서 실천해야 할 삶의 수양적 방편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하는 대나무의 물상에 투영했던 것이리라. <경국대전>에 따르면, 대나무는 도화서(圖畫署)의 화원(畫員)을 뽑는 필수 화목이었다. 당시 산수화나 인물화보다 묵죽(墨竹)을 중요하게 여겼던 셈이다.

고려시대 묵죽으로는 김부식(金富軾), 그의 아들 돈중(敦中), 손자 군수(君綏) 등 삼대(三代)가 이름이 났다. 이인로(李仁老)·정서(鄭敍)·정홍진(丁鴻進) 등도 기록에 남아 있다. 조선시대 중기에는 사대부 화가인 이정(李霆)·오달제(吳達濟)·어몽룡(魚夢龍)등이 묵죽화로 유명했다.

이 중 이정은 시·서·화에 모두 재능을 보인 삼절(三絶)로 꼽혔는데, 특히 묵죽화에 남달랐다. 그는 명나라의 묵죽화풍을 소화한 뒤 조선 미감을 반영해 새로운 묵죽의 전형을 세웠다. 오만원권 지폐 뒷면에 그가 그린 ‘풍죽도(風竹圖)’를 볼 수 있다. 세찬 바람에 몸이 활처럼 휘면서도 꺾이지 않는 탄성과 절개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흙과 불로 빚어낸 대나무… 선비들의 묵죽을 떠올리다
이정(李霆) <묵죽도(墨竹圖)>, 비단에 수묵, 119.1×57.3㎝, 1622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에는 조선 후기 신위(紫霞 申緯, 1769~1847)와 함께 기존 묵죽의 전통에 새로운 예술적 견해를 더해 발전시킨 유덕장(柳德章, 1675~1756)의 묵죽이 있다. 그는 이정의 화풍을 계승하였으나 후기로 갈수록 자기만의 화풍으로 승화해냈다. 통죽을 소재로 다수의 대나무를 한 화면에 배치하고 담묵을 조절해 깊은 공간감을 드러냈다. 진하고 선명하게 그린 대나무 뒤로 옅게 그린 대나무의 깊은 공간감 그리고 마치 안개 낀 달이 다. 달밤에 대숲을 보는 낭만이란.
흙과 불로 빚어낸 대나무… 선비들의 묵죽을 떠올리다
유덕장(柳德章), <묵죽도(墨竹圖)>, 종이에 먹(紙本水墨), 141.5×91.5cm, 1747 ©국립중앙박물관

요즘 현대공예에도 대나무는 여전히 유효한 소재다. 화가라면 묵 혹은 물감 머금은 붓으로 일 획 그어 몸통과 줄기, 잎사귀의 날렵함과 생명력 넘치는 기운을 그릴 것이요. 조각가라면 금속을 마디마디마다 구부리거나 잘라 옛 선비들이 수묵으로 대나무의 형상에 담으려 했던 자연의 순환성과 물질적 생동성을 공간 속에 조형적 기호로 설치하지 않을까.(서정국, 김광호) 공예가라면 공예의 재료와 수법으로 어떤 대나무를 재현해야 할까? 무엇으로 대나무를 소재로 한 옛 문인화, 타 동시대 미술과 다른 차원의 생각할 ‘거리’, 새로운 ‘경지’를 만들 수 있을까?
흙과 불로 빚어낸 대나무… 선비들의 묵죽을 떠올리다
김광호, 겨울바람, 73x13x103cm, Steel, Natural Stone, 2019.
흙과 불로 빚어낸 대나무… 선비들의 묵죽을 떠올리다
서정국, 대나무 Bamboo, 30×200×250cm, 스테인리스 스틸, 2004.
2020년 9월 용산 박여숙화랑과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승희 작가의 전시 ‘공시성(Synchronicity)’에서 나는 빛이 들지 않고 최소한의 조명만 비추는 어두운 공간 속에 기립한 검은 대나무들을 보았다. 댓잎 없이 대마디 줄기만 꼿꼿이 선 검은 대나무는 살아있는 식물을 전시장 안으로 옮겨 오거나 박제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마디를 점토로 빚고 고온에 구워 쌓고 연결한 도자기다. 기둥 높이가 4m에 이른다.

대나무의 마디는 한 종의 흙으로 빚고 같은 유약을 입혔으나 가마 속 위치와 불의 세기에 따라 다른 발색과 질감을 보여준다. 작가는 어울리는 개체를 찾아 줄기 조합을 만들고 개체 크기와 맞물림 순서대로 철봉에 순서대로 끼운다. 수직으로 켜켜이 쌓은 줄기는 가까이 보면 도자기이지만, 멀리서 보면 자연이 만든 것 인양 자연스러운 형국이다. 이것은 자연의 모방일까? 혹은 유덕장의 묵죽도처럼 어둠 속 달빛을 받아 뒤척이는 대나무 줄기와 마디들,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를 통시적으로 연출한 서정적 풍경의 재현인가?
흙과 불로 빚어낸 대나무… 선비들의 묵죽을 떠올리다
이승희, 공시성(共時性, Synchronicity) 세부, 2020. 청주한국공예관
이승희 작가의 개인전 ‘공시성(Synchronicity)’. 도자기 대나무는 자연과 유사하고 근접한 이미지이지만 실재는 아니다. 작가는 자연의 요소, 자연 그 자체를 재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대나무 군집에서 사람을 보고자 함이요, 자연과 사람을 관통하여 공시하는 세계를 보려는 진지한 시각의 구현이다.

자연에서 대나무의 줄기는 땅에서 음기(陰氣)를 빨아올려 하늘을 향해 발산하는 양기(陽氣)의 통로다. 그것은 식물이면서 동시에 하늘과 땅의 매개물이다. 옛 선비들 역시 단순히 나무, 자연물을 자연 애호의 마음으로만 시문을 짓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대나무를 보며 천지와 교감하며 기운생동(氣韻生動) 삶의 원동력을, 사시사철 변화하지 않는 푸름과 올곧은 의지를 보았다. 옛 문인들이 대나무를 그렸던 것은 특정한 시대를 살았던 작가가 대나무에서 각자 보고, 지향했던 것을 그렸다.

그러나 이승희 작가는 ‘공시성(Synchronicity)’을 통해 ‘실제 대나무의 아름다움’, ‘선비들의 올곧은 기개와 청렴’이 아닌 그 안에 담긴 기운,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공간의 특수성을 보고 있다. 그는 붓이나 조각이 아닌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를 순수한 조형성 그리고 흙과 불로 빚어내는 도예공예의 방법과 물성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준다.

이승희의 죽림은 전시장의 대나무 사이를 소요하던 사람의 마음속에 가상의 공간이 떠오르고 재구성될 때 오히려 옛 선비들이 동양화에서 대나무를 묵필로 그려 가시화하고자 했던 근본적 실체가 드러난다. 매개물을 눈으로 보고 거닐고 손으로 만지면서 비로소 머릿속에, 가슴 속에 있는 풍경이 현실에 펼쳐지는 것이다.
흙과 불로 빚어낸 대나무… 선비들의 묵죽을 떠올리다
이승희, 공시성(共時性, Synchronicity) 세부, 2020. 청주한국공예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