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상욱 화백의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제공
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상욱 화백의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제공
세상에 화가는 많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름이 회자되는 화가는 극소수다.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모두 받은 화가라도 대다수는 죽음과 함께 잊혀진다. 이유는 다양하다. 작가의 후손이 없어서, 관심을 갖는 연구자가 없어서, 미술계의 주류가 아니라서, 아니면 그저 운이 나빠서…. 하지만 이들의 유산은 미술계에 남아 알게 모르게 후대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상욱 화백의 생전 모습.
이상욱 화백의 생전 모습.
이상욱 화백(1923~1988)도 그렇게 잊힐 뻔한 화가다. 그는 미술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고 여러 대학에 출강했으며 사후 국립현대미술관(1992), 일민미술관(1997)에서 회고전까지 열었던 ‘헤비급’ 화가다. 하지만 그는 미술계 주류인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 미대가 아니라 단국대 정법대 출신이다.

게다가 미술계에서 ‘낀 세대’로 분류되는 1920년대생이다. 1910년대생(김환기·유영국 등)과 그 뒤에 나타난 1930년대생(박서보·이우환 등)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화백이 2000년대 이후 20여 년간 변변한 전시 없이 잊혀간 이유다.

‘한국적 추상’ 일군 이상욱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더 센테너리’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이 화백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다. 48점에 달하는 그의 시기별 작품이 걸렸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 화백의 아들 이홍기 씨는 “흩어진 아버님의 작품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는데 학고재의 도움으로 전시를 열 수 있었다”며 “앞으로 아버님의 작품세계를 알리는 데 본격적으로 힘쓸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진명 미술평론가는 이 화백의 그림을 ‘서체적이며 서정적 추상’이라고 요약했다. ‘서체적 추상’이란 서예처럼 붓글씨 쓰듯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다. ‘독백’(1970), ‘작품 86’(1986) 등에는 한 번에 긋는 일필휘지의 붓놀림과 여백의 미, 먹의 농담(濃淡) 등 서예의 미학과 기법이 살아 있다.

‘서정적 추상’이란 그림에서 따스한 느낌이 든다는 뜻이다. 고향인 함경남도 함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점’이 대표적이다. 이 평론가는 “서울에 있는 화가와 함흥에 두고 온 친지들이 같은 달을 바라보며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화백은 평생 ‘한국적 추상’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작품의 화풍이 다양한 이유다. 이 같은 노력은 한국 추상미술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후배들이 참고할 원형(原型)이 됐다.

‘추상의 현재’ 김세은·유리

전시작 앞에 앉아 있는 유리 작가.
전시작 앞에 앉아 있는 유리 작가.
학고재 본관의 전시가 한국 추상의 뿌리를 보여준다면, 뒤편 별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세은 작가(34)와 유리 작가(29)의 2인전 ‘루시드 미스터리/다크 클래리티’는 한국 추상의 현재를 보여주는 전시다. 두 작가 모두 ‘분명 현실에 존재하지만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그렸다. 김세은의 ‘핏 스탑’, 유리의 ‘아주 느슨한 시’ 등에서는 젊은 작가다운 신선한 색채와 구성이 돋보인다.

김세은 작가의 ‘핏 스탑’.
김세은 작가의 ‘핏 스탑’.
대형 화랑인 학고재가 20~30대 작가 두 명에게 별관을 통째로 내준 것은 이례적이다. 우정우 학고재 실장은 “둘 다 작품 세계가 단단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며 “그 나이에 추상화로 팬덤을 거느린 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우 실장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유리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겠다는 고객이 갤러리를 찾아왔다. 이상욱의 개인전과 김세은·유리의 2인전 모두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