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세 번째…쐐기문자 점토판·구텐베르크 성서 등 543점 소장
함무라비 법전 등 만져보는 복제품도 전시…유물 확보 등 과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인천에 개관…"세계 문자 허브로 육성"
인류 최초 문자인 쐐기문자로 기록된 '원형 배 점토판', 서양 최초 금속 활자로 인쇄한 '구텐베르크 42행 성서' 초판본 중 '여호수아서' 분책본, 고대 로마 정치인 플리니우스가 저술한 서양 최초 백과사전의 이탈리아어(라틴문자) 번역본….
기원전 2100년 무렵부터 현대까지 폭넓은 시기의 세계 문자 자료가 전시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29일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서 문을 열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프랑스 샹폴리옹 박물관과 중국 문자박물관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지어진 세계 문자 전문 박물관이자 인천에 처음 들어선 국립박물관이다.

2013년 훈민정음학회가 건립을 건의하고 문체부가 2014년 기본구상 연구를 완료한 뒤 2019년 착공해 10년 만에 결실을 봤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열린 개관식에서 "창제 원리가 분명하고 고유의 체계를 갖춘 유일한 문자인 한글이 있는 대한민국에 세계문자박물관이 건립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며 "박물관이 K-컬처 매력의 원천인 한글과 세계의 문자를 잇는 역사·문명의 통합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인천에 개관…"세계 문자 허브로 육성"
◇ 흰색 두루마리 외관…구텐베르크 성서 등 543점 소장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총면적 1만5천650㎡ 규모로 지하 1층은 상설전시실, 지상 1층은 기획전시실과 어린이체험실·편의시설, 지상 2층은 카페테리아로 꾸며졌다.

건축물은 흰색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듯한 외관을 갖춰 '페이지스'(Pages)란 이름을 붙였다.

건립과 전시공사 등에 국비 620억원이 투입됐으며 소장품 확보에 지난 4년간 100억 원 등 720억원의 예산을 들였다.

문체부는 건립지로 선정된 인천에 대해 국립박물관이 없고 국제업무지구가 세계 문자 콘셉트와 잘 맞았으며 인천국제공항 등이 있어 관광 측면의 노력도 적극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소장품으로 희귀 유물을 비롯한 전 세계 문자 자료 244건 543점을 확보했다.

이중 '원형 배 점토판'은 기원전 2000년~1600년 점토판 앞뒷면에 쐐기 문자로 고대 서아시아의 홍수 신화를 기록한 문서이다.

그 내용이 성서의 '노아의 방주'와 유사해 성서고고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록물로 여겨진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인천에 개관…"세계 문자 허브로 육성"
'구텐베르크 42행 성서'(1454년경)는 유럽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한 가장 오래된 서적으로 인쇄술 발달로 종교와 지식 정보가 대중화되는 길이 열렸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아시아권에서 구텐베르크 성서를 소장한 기관은 일본 게이오대학을 제외하면 이곳이 유일하다고 박물관은 설명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새겨진 '카노푸스 단지'(기원전 664~525년)는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제작하면서 시신에서 꺼낸 장기를 보관한 용기이다.

몸체에는 상형문자로 죽은 사람에 관한 내용을 새겼고 뚜껑은 수호신을 형상화한 동물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밖에 마틴 루터가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비텐베르크 구약성서 초판본(1523~1524년), 야자수 잎에 인도 싯다마트리카 계열 문자가 쓰여진 '팔천송반야경 패엽경'(1150~1200년) 등을 갖췄다.

김주원 국립세계문자박물관장은 지난 27일 간담회에서 "박물관은 세계의 문자와 문화, 인류 역사를 만나는 전시와 연구의 허브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한 해 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세계 석학이 모여드는 대표 문자박물관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인천에 개관…"세계 문자 허브로 육성"
◇ 만져보는 복제품도 전시…특별전·문화행사 다채
이들 유물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마련한 상설 전시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자 문화를 비교문화 시각에서 조망한 전시로 쐐기문자부터 이집트·마야·라틴·아랍 문자, 한자, 한글, 한글점자 훈맹정음까지 문자 55종의 다양한 유물과 디지털 이미지로 꾸몄다.

소장품 543점 가운데 136점을 공개했으며, 복제품 44점까지 총 180점이 전시됐다.

스피커를 쌓아올린 김승영 작가의 '바벨탑' 등 문자를 재해석한 미술 작품도 배치했다.

9개 언어로 전시를 설명하고 복제품 중 25점은 직접 만져보는 촉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복제 전시품으로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한 '함무라비 법전', 독일 라이프치히대학도서관이 소장한 현전 가장 오래된 의학 기록인 '파피루스 에버스', 영국박물관이 소장한 인류 최초의 알파벳이 기록된 '세라비트 엘카딤 스핑크스' 등이 있다.

박준호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전시운영부장은 "유럽 등지 유물은 환수 우려로 반출 허가가 나지 않아 중요 유물은 3D 스캔 작업 등으로 정교하게 구현했다"며 "관람객이 손으로 만져보도록 해보자는 취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인천에 개관…"세계 문자 허브로 육성"
향후 유물 확보와 국립한글박물관과의 차별성은 과제로 지적됐다.

김미라 문체부 국어정책과장은 "한글박물관은 한글의 가치에, 이 박물관은 세계 문자 연구와 전시에 중점을 뒀다"며 "유물은 2018년부터 확보했는데, 더 많이 갖춰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은 개관 기념으로 '긴 글 주의-문자의 미래는?'을 주제로 11월 19일까지 특별전을 선보인다.

이달 30일에는 '박물관, 문자를 이야기하다'를 주제로 개관 기념 학술대회를 연다.

울프 죌터 독일 구텐베르크박물관장, 쓰키모토 아키오일본 고대오리엔트박물관장, 어빙 핀켈 영국박물관 학예사 등이 발표자로 참여한다.

문화 행사도 30일부터 7월 6일까지 박물관과 센트럴파크 일대에서 열린다.

박물관 외벽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전시, 문자와 책을 형상화한 포토존 등을 운영한다.

7월 1일 센트럴파크 잔디광장에서는 피아니스트 조윤성 등 7명의 월드뮤직 공연이 열리며, 2일에는 박물관 로비에서 대형 수조를 활용한 수중 공연을 한다.

박물관은 30일부터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