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올 연말까지 공무원들이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전용 노트북인 ‘온북’ 100대를 시범 도입한다. 정부 예산 편성권을 쥔 기재부의 온북 도입을 계기로 모든 공공기관의 온북 도입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및 외국 노트북 업체들도 기재부의 이번 시범사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7일 시스템통합(SI) 업계에 따르면 기재부는 최근 ‘온북 구축 시범사업’ 용역을 발주했다. 소속 공무원들을 위해 온북을 올 연말까지 100대 도입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업 예산은 5억8000만원이다.

공무원들은 국가정보원의 ‘물리적 망분리’ 원칙에 따라 사무실에서 1인 2컴퓨터를 사용한다. 물리적 망분리 원칙은 내부 업무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외부 해킹에 의한 국가 기밀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국정원이 2006년 국가정보보안기본지침을 통해 모든 공공기관은 별도의 망을 써야 한다고 규정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은 업무용망과 인터넷망으로 분리된 2대의 컴퓨터를 각각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개인 노트북으로는 정부 업무망 접근이 불가능하다. 출장이나 외부에서 회의할 때 개인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는 것 자체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서울청사를 비롯한 스마트워크센터에 설치된 업무용 데스크톱에서만 업무를 볼 수 있다.

세종시로 대부분 정부 부처가 이전하면서 물리적 망분리에 따른 제약은 더욱 심해졌다. 이 때문에 개인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활용해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업무자료를 암암리에 내려받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 이는 정부의 보안 규정을 어기는 행위다. 특히 재택근무 등 원격근무 비중이 높아진 상황에서 물리적 망분리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위해 등장한 것이 온북이다. 온북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이 언제 어디서나 사무실과 동일한 환경으로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보안성을 갖춘 업무용 노트북이다.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개발한 구름플랫폼을 적용해 보안을 강화했다. 한 대의 노트북에서 물리적 망분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OS(운영체제)를 만든 것이다. 보안인증을 통과해야만 암호화된 저장공간을 이용할 수 있어 출장이나 회의 등에도 휴대할 수 있다.
기재부 '공무원 노트북' 도입 소식에…삼성·LG 들썩인 이유 [관가 포커스]
온북 도입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주무 부처인 행안부는 공무원 62만명이 온북을 사용하면 향후 5년 간 4조5547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업무공간 전환 등에 따른 기회비용과 전기세 및 용지·인쇄비 절감 등을 합친 것이다.

기재부의 온북 도입은 공공기관 중에선 행안부, 국방부, 교육부,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 이어 다섯 번째다. 15.6인치 90대와 14인치 10대를 시범 도입한 후 자체 평가를 거쳐 도입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재부의 온북 도입에 따라 다른 공공기관의 온북 도입 속도도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행안부는 기존 공공기관 업무용 컴퓨터를 온북으로 2027년까지 90% 이상 교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올해 관련 예산이 대거 삭감되는 등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재부의 온북 발주에 노트북 업체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노트북 시장 수요가 둔화하는 상황에서 60만대에 달하는 공공 노트북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정부의 온북 실증사업에 일찌감치 참여해 노트북 성능을 시험했다. 앞서 발주된 행안부와 교육부,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시범사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나란히 수주했다. 국방부는 LG전자가 따냈다.

업계에선 대만 에이수스와 미국 델 등 외국 노트북 제조업체들도 기재부의 시범 사업에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에이수스와 델은 최근 협력사를 통해 온북 전용 노트북을 조달 등록했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낮은 가격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저가 노트북을 앞세운다면 외국 업체들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