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자영업자 팽개친 노동계 최저임금 요구안
“영세한 소상공인들은 고용을 포기하거나 가게 문을 닫으라는 것인가.”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22일 “참담하고 비통하다”며 이 같은 입장문을 냈다. 이날 노동계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무려 26.9% 오른 금액으로 제시하고,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부결시킨 데 대한 규탄이었다.

최저임금위 근로자위원들은 내년도 최저시급으로 올해(9620원)보다 2590원 오른 1만2210원을 요구했다. 월 소정근로 209시간 기준 255만1890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최근 고물가 상황을 감안해도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은 안중에 두지 않은 무리한 요구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상공인들은 최근 6년간 48.7%나 인상된 최저임금으로 이미 한계상황에 내몰렸다는 게 연합회의 하소연이다.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최저임금도 못 버는 편의점주는 2016년 11.3%에서 지난해 30.4%로 증가했다.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소상공인 최저임금 궐기대회’에 참가한 자영업자 김모씨는 “고용주의 지급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수준의 최저임금으로 인해 자영업체들이 문을 닫으면 결국 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가 요구안을 일단 높게 부르고 보는 ‘호가 올리기’는 매년 나타난다. 최저임금 심의는 노사가 각각 제시하는 최초 안의 격차를 좁혀가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높게 부르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소모적이고 비합리적인 현상은 일관된 근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최저임금 결정 구조가 초래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정한다’고 명시돼 있을 뿐 구체적인 결정 기준이 없다. 이러다 보니 최근 수년간 결정 과정에서는 전례 없던 고려사항들이 제시됐다. 최근 최저임금 결정 산식에 등장한 ‘협상배려분’ ‘노동시장 내 격차 해소분’ ‘산입범위 확대 임금 감소 고려분’ 등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최저임금 결정이 고용·취업을 위태롭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법에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의 고용 능력 등 고용시장의 종합적 현황을 충분히 반영하라는 의미다. 한국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최저임금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공멸’이 아니라 ‘공생’의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