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넷플릭스와 기울어진 운동장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인 테드 서랜도스의 방한으로 한국이 들썩이고 있다. 21일엔 박찬욱 감독 등 영화인들을 만났고, 22일엔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내 최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서랜도스 CEO 방한에 이목이 쏠린 것은 넷플릭스가 최근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해서다. 그는 지난 4월 미국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4년간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의 콘텐츠 투자를 약속했다. 넷플릭스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에 투자한 금액의 두 배 수준이다.

한국을 찾은 서랜도스 CEO를 바라보는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들은 마음이 복잡하다. 국내 기업에 불리하게 짜인 ‘기울어진 운동장’이 한층 공고해질 것이란 우려가 상당하다.

韓 통신사와 '망 이용대가' 갈등

SK브로드밴드는 ‘망 이용대가’를 놓고 넷플릭스와 3년째 소송을 진행 중이다. 대량의 트래픽을 유발하는 업체라면 전용선 사용료를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는 게 SK브로드밴드의 입장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각자의 비용은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망 이용대가는 국내 IT 산업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다. 인터넷 트래픽이 많은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업체들은 매년 수백억원을 통신망업체에 납부 중이다. IT 플랫폼 발달로 망 사업자의 시설투자 비용이 늘어났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반면 넷플릭스,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이중요금 부과’라며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이 직접 나서 넷플릭스의 투자를 유치한 상황에서 해외 빅테크에 망 이용대가를 강제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기울어진 운동장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 업체들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온라인 개인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에 따라 필수·선택 정보를 구분하고, 선택 정보에 대해서는 별도의 동의를 받고 있다. 이렇게 하면 대부분의 사용자가 ‘필수’ 항목에만 동의를 누르게 된다. 반면 구글, 넷플릭스 등은 자사의 글로벌 기준을 앞세우며 가이드라인을 거부하고 있다. 전체 항목을 ‘동의’ 버튼 하나로 체크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모은다. 국내 소비자의 내밀한 정보를 제일 잘 아는 곳이 구글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IT 산업 전선 곳곳에 '구멍'

한국은 IT 시장에서 글로벌 빅테크의 침공을 비교적 잘 버텨온 국가였다. ‘검색’ 네이버와 ‘메신저’ 카카오를 필두로 주요 영역에 토종 업체들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최근엔 전선 곳곳에 구멍이 생기고 있다.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뮤직이 약진 중인 음악 앱 등이 대표적이다. 검색 등 인터넷 서비스 분야도 챗GPT를 필두로 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설 자리가 좁아지는 모양새다. 정부의 차별적 규제가 국내 업체들의 역량이 약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한국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내 업체에도 똑같이 발부하는 ‘청구서’를 면제해 줄 이유는 없다. 세계 각국이 자국 업체 보호에 골몰하는 상황이다. 넷플릭스의 투자 유치를 자축하기에 앞서 국내 업체에만 가혹한 차별적인 규제를 점검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