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19일 오전 8시. 이날 오후 개각을 앞두고 현직 국무위원들로 구성된 마지막 국무회의가 열렸다.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시작한 이날 회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달아올랐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안건으로 올린 ‘예술학교 설치법’ 때문이었다. “왜 문화 분야에만 특권을 주느냐”는 농림부와 동력자원부 장관의 공격에 이 장관은 “예술인을 보통 아이들처럼 기르면 망가진다”며 맞섰다. 예술 영재교육은 실기 중심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기존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학교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한민국 예술교육의 요람’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는 이렇게 특혜 논란을 딛고 태어났다. 그런 한예종이 또다시 특혜 논란의 중심에 섰다. 30여 년 전 싸움 상대가 비예술계였다면, 이번에는 같은 예술계다. 한예종에 석·박사 학위를 신설하는 ‘한예종 설치법’을 두고 다른 예술대학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서다.

29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은 ‘한예종에만 특혜를 주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한예종은 등록금이 일반 예술대학의 절반 수준으로 올해에만 국비 950억원이 투입된다”며 “이런 학교가 석·박사 학위까지 줄 수 있게 되면 영재교육부터 박사 과정까지 예술인재를 독점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동국대도 이날 성명을 통해 “한예종은 고등교육법 대상이 아닌 탓에 교육과정 편성과 입학정원 관리 등을 아무런 통제 없이 운영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만들겠다는 건 고등교육법과 배치되는 모순된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도 “본래의 설립 목적인 예술 실기교육을 통한 전문예술인 양성이라는 취지에서 벗어나고,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대학을 구조조정하는 정부 정책과도 맞지 않는 법안”이라며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석·박사 신설은 한예종의 30년 숙원 사업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발레리나 박세은, 배우 김고은 등 예술계 스타를 줄줄이 배출해온 한예종은 고등교육법상 대학이 아니라 ‘각종 학교’다. 졸업하면 학사 학위는 인정받지만 대학원 과정은 없다. 한예종에 있는 ‘예술전문사’ 과정은 ‘석사 학위에 상응하는 학력’일 뿐 정식 학위는 아니다. 그렇다 보니 한예종을 나와도 교수가 되려면 다른 학교에 다시 들어가야 하고, 이것이 예술인재 해외 유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한예종의 주장이다.

한예종에 석·박사 학위 과정을 신설하는 법안은 국회에 3건 발의돼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30일 이들 법안을 심사할 계획이다. 한예종 석·박사 신설 논의는 1999년과 2005년에도 추진됐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