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쪼가리 동판'에 별을 새기고 갔다
17세기 초 활동한 화가 아담 엘스하이머(1578~1610)는 32세에 요절했다. 그는 주로 10~50㎝ 정도 너비의 작은 동판에 유화를 그렸다. 기구한 삶 탓에 많은 것을 남기진 못했다. 낡은 코트, 쥐가 파먹은 담요, 흰 장화 한 켤레…. 부인과 두 살배기 아들을 부양하기엔 어림도 없었다.

“그는 동시대의 어떤 예술가보다도 큰 성취를 거머쥐었다.” 최근 <자연의 빛>을 출간한 예술비평가 줄리언 벨은 엘스하이머가 남긴 40여 점의 작은 그림이 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말한다. 천문학의 발전이 ‘하늘로의 문’을 막 열던 시기. 그의 작품은 루벤스, 렘브란트 등 후대 화가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1578년 독일에서 태어난 엘스하이머는 작품 활동을 위해 이탈리아로 넘어갔다. 17세기 로마에선 바로크 회화가 유행했다. 이전 르네상스 양식이 단정하고 우아한 표현을 중시했다면, 바로크 기법은 빛을 활용한 극명한 명암 대비가 두드러졌다. 당시 이름을 날리던 카라바조 등 화가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배경에 화려한 색채로 인물을 묘사했다.

엘스하이머의 작품은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사실적이고 세밀하다. 많은 바로크 화가가 널찍한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던 것과 달리, 엘스하이머는 동판에 그린 ‘캐비닛 아트’를 고집했다. 캐비닛 아트란 말 그대로 캐비닛에 넣을 만큼 작은 작품을 뜻한다.

작품에 숨을 불어넣는 듯한 저자의 평론은 글맛을 더한다. 두 가지 판본으로 전해지는 ‘토비아스와 천사’는 아버지의 시력을 고치기 위한 여정에 나선 소년을 그렸다. 저자는 인물 뒤편의 소, 나무, 구름과 새 등 전체적인 풍경이 두 인물과 함께 이동하는 것처럼 배치된 점을 짚어낸다. 또 다른 판본에선 ‘치유와 구원에 대한 불확실한 약속’을 상징하는 딱총나무꽃의 의미를 풀어낸다.

대표작은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이집트로의 도피’다. 예수와 성(聖) 가족이 밤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들의 뒤편을 감싸는 빽빽한 숲 위로 별빛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이 작품은 유럽 미술사 처음으로 달빛이 비치는 밤과 은하수를 표현했다. 저자는 바로 이 작품에서 튀코 브라헤, 조르다노 브루노 등 당대 천문학자들이 상상했던 우주의 광활함이 드러난다고 강조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가족은 이집트뿐 아니라 그 어디로도 도피할 수 없었다. 동료 예술가는 빚에 허덕이던 그를 채무자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의 심신은 빠르게 망가졌다. 그가 죽은 뒤, 아들은 커서 수도사가 됐다. 아버지의 짧고 고통스러웠던 삶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너머에선 평안한 삶을 살기를 기도하지 않았을까.

정리=안시욱 기자

이 글은 WSJ에 실린 크리스토프 임셔의 서평(2023년 5월 20일) ‘Natural Light Review: Adam Elsheimer’s Tiny Works of Wonder’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