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림·성능경·이강소·이승택 등 작가 29명 조명
구겐하임미술관 공동기획…한국전시 후 9월 뉴욕 구겐하임 전시

1970년 8월 15일 서울 사직공원에 일군의 청년예술가들이 모였다.

이들은 광복절을 맞아 외래문화로부터 한국문화의 독립을 선언하고자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이라는 이름의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행진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에 연행돼 즉결심판에 넘겨졌고 이들의 대표(통령)인 작가 김구림은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심문받았다.

정부는 이후 모든 문화 영역에서 '전위'를 불허하고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에 나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구림 등이 참여한 전위작가단체 '제4집단'은 해체됐다.

60∼70년대 전위적인 한국실험미술 역사…국립현대미술관 전시(종합)
한국의 전위적인 실험미술사를 살피는 전시가 26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실험미술은 1960∼1970년대 활발했지만 1980년대 이후 단색화와 민중미술의 득세 속에 주목받지 못했다가 최근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기성세대의 형식주의에 반발하며 그룹으로, 또 개인으로서 다양한 매체를 실험했던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승택 등 29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 95점을 통해 한국 실험미술사를 정리한다.

제4집단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60년대 후반 시작된 한국 실험미술의 역사는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유신정권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며 발전했다.

60∼70년대 전위적인 한국실험미술 역사…국립현대미술관 전시(종합)
앵포르멜(비정형 미술) 회화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 '무동인', '신전동인' 같은 신진 작가 그룹은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열고 앵포르멜에 반발하며 반(反)예술을 주장했다.

이들은 앵포르멜의 '뜨거운 추상'에 대항해 '차가운 추상', 즉 기하학적 추상을 선보였다.

연통, 고무장갑, 성냥 등 산업화로 일상화된 물질들을 사용한 '생활 속의 예술'도 등장했다.

한국 미술사 최초의 해프닝 중 하나로 기록된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을 시작으로, 최초의 페미니즘적인 해프닝 '투명풍선과 누드', 제2한강교 아래서 화형식 형태로 기성세대를 비판한 '한강변의 타살' 등 여러 해프닝도 1970년대초까지 계속됐다.

60∼70년대 전위적인 한국실험미술 역사…국립현대미술관 전시(종합)
이들의 작업은 '이게 예술이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구림은 1969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을 염하듯이 흰 광목천으로 감싸는 '현상에서 흔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주최측은 초상집 같다는 이유로 천을 26시간 만에 철거했다.

프로젝트 장면을 소개하며 "이것도 '작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작가(?) 김구림"으로 표기했던 잡지 사진은 당시 실험미술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유신정권 시대 예술적 전위를 표방했던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당시 시대 상황이 간접적으로 반영되기도 했다.

하종현은 1972년 제3회 AG전에서 철조망과 용수철을 사용한 작품을 처음 선보인다.

합판 위에 마포를 덮고 그 위에 격자 형태로 철조망을 배치하고 나사로 고정한 작품 속 철조망의 뾰족한 끝은 감옥의 철창과 함께 독재정권을 연상시키는 것으로도 읽힌다.

60∼70년대 전위적인 한국실험미술 역사…국립현대미술관 전시(종합)
1971∼1981년 활동한 전위미술단체 'ST'(Space&Time)는 해프닝이란 단어 대신 '이벤트'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건용, 성능경 등은 걷거나 먹는 일상적 행위를 계획적으로 정교하게 반복하고 그런 행위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여러 작가가 함께 벌였던 초기의 해프닝과는 달리 ST 작가들은 그룹이 아닌 개인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이는 당시 여러 명이 모이기 힘들었던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또 사회적 억압이 거셌던 답답한 현실의 돌파구가 되기 해외 비엔날레를 찾았다.

전시에서는 당시 박현기, 심문섭, 이강소 등이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60∼70년대 전위적인 한국실험미술 역사…국립현대미술관 전시(종합)
전시 기간 실험미술사의 대표적인 퍼포먼스인 김구림의 '생성에서 소멸로', 성능경의 '신문읽기', 이건용의 '달팽이 걸음' 등이 재현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뉴욕의 솔로몬 R.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 기획했다.

전시는 7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되고 이어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된다.

내년 2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해머 미술관에서도 전시가 이어진다.

유료 관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