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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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의 모두채움서비스가 과도하게 확대돼 세무사 업무영역을 침해할 뿐 아니라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세무사는 국가 재정수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데, 이런 입장에서 보면 극히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 3일 열린 중부지방국세청과의 간담회에서 유영조 중부지방세무사회장이 한 얘기다. 무슨 얘기일까. 국세청이 제공하는 모두채움서비스는 납세자의 세금신고서를 국세청이 대신 채워주는 서비스다. 국세청에서 납부(환급) 세액을 미리 계산해 신고 안내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세청이 납세자 편의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세무사 일감이 줄었다는 것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특히 유 회장은 다음달 열리는 제33대 차기 한국세무사회장 유력 후보 중 하나다. 국세청 모두채움서비스를 바라보는 이 같은 인식은 세무사회 지도부뿐 아니라 상당수 세무사가 공통으로 가진 불만이라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차기 회장 선거 과정에서 회원들의 표를 얻기 위해 모두채움서비스에 대한 후보들의 공격이 잇따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모두채움서비스는 종합소득세뿐 아니라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법인세 등 모든 세목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5월에 납부하는 종합소득세는 전체 신고대상자 1180만명 중 절반이 넘는 640만명에게 모두채움서비스가 제공됐다. 서비스 대상은 2021년 212만명에서 지난해 497만명, 올해 640만명으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 편의는 '관심 밖'…국세청 서비스에 뿔난 세무사 [관가 포커스]
원칙적으로 세금 신고는 납세자가 직접 하는 것이다. 세금을 신고·납부할 때는 올바른 방법으로 적법하게 신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계산서 등 증빙 미발행 가산세, 무신고·과소신고 가산세 등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세무 지식이 많지 않은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세금을 납부할 때마다 세무사를 찾는 이유다.

세무사의 세무 대리 수수료는 공인중개사 중개수수료처럼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세무사마다 수수료 책정금액이 다르고, 상담 종류에 따라 수수료도 달라진다. 각종 포털 등에 온라인 세무 상담 수수료가 공개돼 있긴 하지만 이는 단순 상담 서비스일 뿐 실제 대리 서비스로 이어졌을 때의 수수료는 공개되지 않는다.

가장 기본이 되는 세무기장 서비스 수수료는 월 10만원대에서 형성돼 있다. 기장은 장부를 대신 작성해주는 서비스다. 사업 규모가 클수록 거래구조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매출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 부과하고 있다. 종합소득세도 매출과 연동해 수수료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국세청이 제공하는 모두채움서비스 덕분에 납세자들은 세무사를 찾아갈 이유가 없어졌다. 모두채움서비스를 통해 납세자는 내역을 확인한 후 동의만 하면 간단히 세금 신고를 완료할 수 있다. 보유한 자료가 방대하기 때문에 납세자 편의를 위해 이런 서비스를 도입하게 됐다는 것이 국세청 설명이다. 납세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국가에 세금을 내는 과정에서도 추가로 세무사들에게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국세청의 이런 서비스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세무사들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스마트폰 등을 통해 납세환경이 쉽고 편리해질수록 세무사들의 일감은 줄어들게 된다. 세금 신고·납부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워야만 세무사들 입장에선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인 5월은 세무사들에게 있어 많은 수수료를 벌어들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앞서 유 회장이 노골적으로 밝힌 모두채움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결국 납세자들의 세금 신고·납부를 어렵게 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세무사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세무사 회원 수는 1만5524명이다. 이 중 1만4852명이 개업해 활동하고 있다.

국세청에 대한 세무사들의 불만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열린 국세행정개혁위원회에 참석한 원경희 세무사회장은 국세청이 올해 제시한 화두인 ‘챗GPT’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국세청은 챗GPT를 소개하면서 ‘전문가 도움이 필요 없기는 쉽고 편리한 홈택스 개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원 회장은 “세무사 등 세무 대리인의 필요성을 전부 무시한 향후에는 없어져야 할 납세협력자로 인식하도록 하는 부정적인 용어”라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국내외 각종 조사에서 세무사는 인공지능(AI) 등의 등장으로 가장 먼저 없어질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국세청은 세무사회의 이런 지적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사들과는 세금 신고·납부 관련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고만 밝혔다.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세무사들도 AI 등 기술 발전에 따른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며 “세무사들도 국민들이 세금을 내기 편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