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왼쪽)가 14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왼쪽)가 14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정부와 국민의힘이 14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것은 예고된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국회 본회의 통과 전 당정이 내놓은 여러 타협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고 본회의에서 처리했기 때문이다.

당정은 지난달 27일 법안이 통과된 뒤에도 간호단체 민주당 등과 물밑 협상을 수차례 이어왔다. 지난 11일 민주당에 네 가지 중재안을 제시한 데 이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의 단식농성장까지 찾아 설득을 거듭했다. 제정안이 직역 간 갈등을 유발하는 데다 의료법 체계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재의 요구 시한(19일)을 닷새 남긴 이날 당정은 중재안을 도출하지 못한 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게 됐다.

당정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법안이 국무회의에 부의되는 만큼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여당의 입장이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의료시스템 붕괴로 인한 국민들의 건강권 위협 등을 감안할 때 이제 입장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거부권 행사 시점’을 묻는 질문에 “조속한 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당정은 간호단체 등과 협상을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협상과 논의를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며 “간호사들의 처우가 열악한 것을 알고 있고 직역 간 갈등도 큰 만큼 중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정치적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여론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바 있어서다. 최대한 성의 있게 간호단체 등과 협상하는 모습을 보여 거부권 행사에 따른 여론 악화를 가능한 한 줄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앞으로 방송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여당은 관련 정치적 부담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별개로 보건의료계 간 갈등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와 간호조무사 단체 등은 제정안 통과에 반발해 17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12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간호단체는 거부권 행사 시 단체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양길성/이지현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