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마술사 ‘마크 샤갈’ 1887.7.7 – 1985.3.28
색채의 마술사가 영원히 잠든 그곳,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벙스'
©Y

4월 중순인데도 런던의 날씨는 흐리고 쌀쌀하다. 추운 런던을 뒤로하고 나는 따뜻한 프랑스 남부 니스로 향했다. 1시간 30분 남짓 비행을 하자 착륙 준비 방송이 나온다. 창문 밖을 보니 햇살이 반짝이고 있는 프랑스 남부의 코트다쥐르(Côte d’Azur) 해안이 보인다.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바로 그곳, 지중해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강렬한 햇살, 그 누가 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코트다쥐르는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니스에 도착 후 처음 찾은 곳은 샤갈미술관이다. 샤갈미술관은 니스의 한적한 주거지역에 있고, 미술관에 들어서면 작은 정원이 맞이해준다.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나무와 꽃들 사이 작은 카페가 있어 작품을 보기 전 커피를 마시며 잠시 샤갈에 대해 생각해본다.

파리에서 다시 태어난 ‘마크 샤갈’

색채의 마술사가 영원히 잠든 그곳,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벙스'
출처: 위키피디아


1887년 태어난 샤갈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1985년, 9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샤갈이 장수한 덕분에 나는 운 좋게도 샤갈의 마지막 8년을 같은 세상에서 숨 쉬는 행운을 얻었다.

샤갈은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샤갈을 알아본 어머니 덕분에 가난했지만 그림 공부를 할 수 있었고, 1910년 23세의 샤갈은 파리로 이주하였다. 당시 파리는 예술의 황금시대를 보내고 있었고 모네, 고흐, 고갱, 마티스, 피카소 등 대가들의 작품과 유명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도시였다. 샤갈은 예술의 도시 파리에 사로잡혔고 이름도 모이셰 하츠켈레프 샤갈(Moishe Hatskelev Chagal)에서 프랑스식 이름 ‘마크 샤갈(Marc Chagall)’로 개명하였다.
색채의 마술사가 영원히 잠든 그곳,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벙스'
출처: 위키피디아

나와 마을 1911, 뉴욕현대미술관
샤갈 그림의 첫인상은 몽환적이었다.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에 사람, 동물, 물체들이 무중력상태로 둥둥 떠다니고 원근법은 사라졌다. 그의 예술은 하나의 사조로 설명하기 어렵다. 파리에 모인 개성 넘치는 화가들에게서 여러 영향을 받았고 그것은 그의 작품 속에서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야수주의 등 여러 모습으로 공존한다. 샤갈은 하나의 미술 사조 속에 자신의 예술을 가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프랑스 국립미술관이 되다

색채의 마술사가 영원히 잠든 그곳,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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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미술관은 올해 개관 50주년이 되었다. 그는 1966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했던 ‘성경 메시지’의 대형 작품 17점을 프랑스에 기부했다. 그리고 당시 샤갈의 친구이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미술관 설립을 계획했고, 니스 시가 지금의 미술관 자리를 제공하여 1973년 7월 7일 샤갈의 87번째 생일날 샤갈 미술관이 탄생하였다. 문화적으로 콧대 높은 프랑스가 자국인이 아닌 화가의 미술관을, 그것도 화가 생전에 국립미술관으로 허가해주었다는 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샤갈의 중요성과 인지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술관은 성경 주제에 대한 회화, 동판, 에칭, 조각, 석판화, 태피스트리 등 300점 이상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은 샤갈의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 주제이다. 샤갈이 아내 벨라, 딸 이다와 함께 유대인의 고향 이스라엘을 여행했을 때 유대인의 문화와 성경에 깊이 매료되어 그림으로 많이 남겼다. 성경의 내용은 샤갈의 강렬한 색과 상상력에 의해 그림으로 재탄생하였다.
색채의 마술사가 영원히 잠든 그곳,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벙스'
출처: 샤갈미술관

천국 Le Paradis, 1961
그림은 파랗고 초록빛으로 물든 에덴동산을 보여준다. 성경 창세기의 ‘이브의 창조’라는 주제와 ‘유혹’이라는 두 개의 주제가 묘사되어 있다. 그림 왼편 하단에는 아담이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어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음을 묘사한다. 오른편에는 두 팔과 세 다리로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얽힌 태초의 부부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으려 하고 있다. 이브의 옆에는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하는 에덴의 뱀이 그려져 있다.
색채의 마술사가 영원히 잠든 그곳,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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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세 명의 천사 Abraham et les Trois Anges 1960-6
그림 가운데 세 명의 천사가 앉아 있고, 왼편의 아브라함이 두 손을 모으고 겸허한 자세로 천사들을 환대하고 있는 장면이다. 아브라함의 왼편으로 그의 종이 천사들의 발을 씻을 물을 들고 있고, 천사들 앞에는 떡과 우유, 송아지 요리가 차려져 있다. 천사들은 환대를 받은 후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 그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전하고, 그 말씀대로 아내가 임신하여 100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이 태어났다.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벙스 Saint Paul de Vence’
색채의 마술사가 영원히 잠든 그곳,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벙스'
출처: 위키피디아

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프랑스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다. 그는 말년을 보냈던 프랑스 남쪽 마을 ‘생폴 드 벙스(Saint Paul de Vence)’에 잠들어 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도 아름답다. 생폴 드 벙스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곳이다. 누군가의 무덤을 찾아가기 위해 이렇게 동화 같은 마을을 가본 적 있었던가? 지중해에 맞닿은 마을은 16세기 성벽이 남겨진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인 곳이다.

샤갈도 걸었을 수백 년 된 마을의 돌길을 걷고 꽃바구니가 걸린 카페에 앉아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분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샤갈이 왜 이 마을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갔다. 98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낸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던 삶이었기에 시끄럽고 복잡한 밖의 세상과 단절된,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에서 평온하고 싶었을 것이다.
색채의 마술사가 영원히 잠든 그곳,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벙스'
샤갈의 예술 안에는 사랑이 보인다. 가난했고 유대인이기에 차별받았고, 1·2차 세계대전을 유대인으로서 겪어야 했고, 망명 생활 중 사랑하는 아내이자 뮤즈였던 벨라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그의 삶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비극이 그를 암흑 속에 가두려 해도 그는 사랑과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예술 안에 사랑과 희망의 색채를 담아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치유하였다. 그리고 ‘사랑’으로서 샤갈은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