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시내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정부·여당이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면서 한국전력의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5일 서울시내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정부·여당이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면서 한국전력의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한국전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한전에 항의 서한을 보낸 영국계 투자회사 실체스터뿐 아니다. 현재 한전의 외국인 지분율은 외환위기 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국인이 보유한 한전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지분도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ADR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며 한전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증서다. 한전이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전기를 팔아 적자가 쌓이는데도 정치적 논리에 막혀 전기요금 인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외국인들이 한전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전 떠나는 외국인

한전 외국인 지분 5년새 '반토막'…"전기료 결정을 왜 정치가 하나"
5일 현재 한전의 외국인 지분율은 14.4%로 외환위기 때인 1997~1998년 후 최저다. 당시 외국인의 한전 지분율은 10% 정도였다. 이후 2000년대엔 한전의 외국인 지분율이 통상 20~30% 수준을 오갔다. 2016년엔 33%까지 높아졌고 5년 전인 2018년만 해도 28%대였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과 탈원전에 따른 발전단가 상승, 전기요금 인상 제한 등이 맞물리면서 외국인 지분율은 5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씨티뱅크가 관리하는 ADR도 본주 기준으로 환산한 지분율이 2019년 말 4.3%였지만 작년 말엔 1.68%로 떨어졌다. 한전의 DR 유통 한도인 12.5%에 크게 못 미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전의 외국인 지분 감소에 대해 “한전의 투자 매력이 줄어든 게 주된 이유”라며 “외국인 보유 한도(보통주 기준 40%)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 종목이었던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포퓰리즘식 전기요금 결정

한전은 산업은행 32.9%, 한국 정부 18.2%, 국민연금 7.06% 등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분이 약 60%에 달하고 나머지는 소액주주와 해외 기관투자가가 나눠 갖고 있다.

한전의 외국인 지분이 줄어드는 건 한전의 실적이 악화하고 있지만 한전이 전기요금을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하는 구조 때문이란 게 시장에서 나오는 분석이다.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국이 전기요금을 크게 올렸지만 한전은 ‘국민 부담’을 내세운 정치권 압력에 막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요금을 받고 있다.

예컨대 올 2월 기준으로 한전은 발전사에서 ㎾h당 165.5원에 전기를 사와 가정과 공장 등에 149.7원에 판매했다. 전기를 많이 팔수록 손실이 더 커지는 구조다. 이런 구조가 이어지면서 한전은 지난해 32조원 넘는 영업적자를 냈다. 올해도 전기요금 인상이 늦어지면서 10조원대 영업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란 게 증권사들의 예상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2021년 에너지 가격 변동분을 분기마다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이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도입 후 올 1분기까지 9개 분기 동안 전기요금이 제도 취지에 맞게 조정된 것은 2021년 4분기와 작년 3분기 등 2개 분기뿐이다. 나머지는 ‘예외적인 상황 발생 시 정부가 요금 조정을 유보할 수 있다’는 부대조항이 적용돼 전부 동결됐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연료비 조정폭은 어차피 직전 요금 대비 ±5원 내로 제한돼 있다”며 “부대조항이 제도 자체를 흔드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전기요금 결정을 정부가 아니라 여당이 주도하는 ‘기형적 선례’까지 만들어졌다. 전기요금은 원래 한전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조정을 신청하면 산업부 장관이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한 뒤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 정치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최근엔 여론을 의식하다보니 여당인 국민의힘이 사실상 전기요금 결정의 키를 쥐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당과 정부의 소통은 합리적인 정책 수립을 위한 바람직한 창구여야 하는데, 사실상 여기서 요금 수준이 논의되는 전형적인 후진국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선진국은 금융통화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처럼 독립적인 위원회에서 전기요금을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박한신/이슬기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