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쟁'을 기억하는 법 [별 볼일 있는 OTT]
80년 전 네덜란드 셸드강 전투
세 청년의 참전기, 담담한 전개
전쟁은 우리를 어떻게 바꾸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포가튼 배틀’은 네덜란드 남서부 항구도시 플리싱언에서 일어난 ‘셸드강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네덜란드에서 만든 이 영화는 마테이스 판헤이닝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아바타 2: 물의 길’(2022)에서 제이크 설리의 아들 역을 맡은 제이미 플래터스부터 하이스 블롬, 쉬잔 라더르 등 네덜란드 출신 배우가 대거 캐스팅됐다.
작품 무대부터 생소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세계 전쟁사에 남을 만큼 유명한 장소가 아닌 네덜란드의 한 작은 도시에 있는 강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렸다. 이야기는 자의 또는 타의로 전쟁에 휘말린 평범한 청년 세 명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독일 해군 돌격대 병사 판스타베런은 동료를 잃은 뒤 줄곧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는 러시아 전선에서 상해를 입고 네덜란드 전선으로 재배치된다. 반대 진영의 영국인 조종사 윌은 철없는 호승심에 불타오르는 초보 파일럿이다. 고위 군 간부였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참전했다가 독일군 점령지 한가운데에 불시착한다.
나치 치하 시청의 행정직 사무원이던 퇸은 평범하게 사는 여성이다. 하지만 남동생 디르크가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게 들통 나 고문을 받아 사망한 뒤 퇸의 삶도 바뀐다. 동생의 복수를 위해, 그리고 나치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행동에 나선다. 그는 동생이 남긴 독일군 작전계획을 연합군에 전하기 위해 전장으로 향한다.
이 영화의 문법은 다른 전쟁 영화들과 조금 다르다. 주인공 세 명의 사연을 옴니버스식으로 각각 풀어낸다. 그러다 셸드강 전투에서 ‘우연히’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세 명의 시선을 공유하며 ‘나’가 아닌 ‘우리’의 차원으로 전쟁의 참상을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확장해 나간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 등 전쟁을 다룬 다른 영화들만큼 영상 자체가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진 않다. 총탄이 빗발치는 블록버스터를 기대하고 봤다간 실망할 수 있다. 출연한 배우들과 전쟁의 배경이 되는 공간도 낯설고 평범하다. 하지만 이런 평범함은 오히려 전쟁의 비극을 더 깊이 와닿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전쟁은 어떤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마주한 거대한 재앙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80여 년 전 ‘잊혀졌던 전쟁’은 이렇게 스크린을 통해 부활했다. 셸드강 전투는 연합군 3231명, 독일군 4250명, 민간인 228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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