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 인사 조치가 부당하다며 근로자가 낸 소송에서 회사가 패소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저성과자 관리를 둘러싼 직장 내 갈등이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졌다는 평가다. 법원의 이 같은 기류에 기업들은 이전보다 나은 희망퇴직 조건을 제시하는 등 ‘울며 겨자 먹기’식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저성과자 해임' 제동 건 법원…난감한 기업들

최하 인사평가도 해고 사유 불충분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강우찬)는 지난해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우수 연구원의 정년을 만 61세에서 만 65세로 연장하는 ‘정년연장 연구원’에 선발돼 정년 만기 시기를 기존 2019년 2월에서 올해 2월까지 늦추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2019, 2020년 인사평가에서 연이어 최하위 등급(D)을 받아 해임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측은 “‘인사평가에서 2회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으면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년 연장 연구원 자격을 해임할 수 있다’는 운영 요령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중노위에 구제 신청을 넣어 해고의 부당함을 인정받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를 뒤집지 못했다. 재판부는 “상대평가 탓에 평가 대상자 중 5%는 무조건 D등급을 받는다”며 “해고에 이를 정도로 근무 성적이 나빴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저성과자 교육으로 기업이 손해배상하는 사례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1부(재판장 정봉기)는 퇴직 근로자 B씨가 국민은행과 노조를 상대로 낸 인사발령 무효 확인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민은행에 “B씨에게 약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원고와 피고 모두 항소하지 않으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국민은행은 2011년 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성과 향상 프로그램(PIP)을 한시적으로 운영했다. 당시 인사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직원을 ‘후선역’으로 배치했다. B씨도 2012년 후선역으로 배치됐다. 이후에도 성과가 향상되지 않아 2018년까지 13차례 인사 발령 및 징계 조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PIP의 일환으로 총 883시간의 사회봉사도 했다. 재판부는 “비자발적 사회봉사를 시킨 것은 불법이며 이로 인해 B씨가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인정했다. 국내에서 PIP에 따른 정신적 손해를 인정한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하이닉스도 PIP를 문제 삼는 직원들과 4년여간 소송전을 벌였다. 직원들은 “회사가 퇴직을 유도할 목적으로 매년 인사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매기고 사실상 퇴출 프로그램으로 운영했다”며 성과급 미지급액 등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SK하이닉스는 1~3심 모두 승소해 숨을 돌렸지만 PIP를 둘러싼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PIP는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논란으로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운용하기 쉽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차라리 희망퇴직 조건 개선”

최근 들어 기업들은 저성과자 처우를 두고 더욱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존보다 나은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유도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한 정보기술(IT)업체 인사담당자는 “IT·개발업계 중견업계도 과거엔 희망퇴직 위로금으로 ‘근속기간 1년당 1개월치 임금’ 혹은 ‘근속기간과 상관없이 3개월치 임금’을 지급했지만 최근엔 최대 6개월치 임금을 주거나 퇴사 직원에게 외주로 특정 프로젝트를 맡기겠다고 약속하는 등 추가 조건을 내걸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로펌 노동담당 변호사는 “법적 다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근로자가 문제 삼을 소지가 없는 퇴직 권고 방식이나 희망퇴직 공고문 작성법 등을 문의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진성/곽용희 기자 jskim1028@hankyung.com